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⑱그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는 이스라엘의 황금시대였다. 그리고 동서양의 어느 나라도 그 시대의 영광을 따라갈 수 없다고 성경은 적어 놓았다. 그러나 하나님 쪽에서 볼 때에 그 빛나는 영광의 시대도 역시 ‘고난의 광야’였다. 성전 건축을 준비하려는 다윗의 열심 때문에 백성들은 조세에 시달려야 했고, 솔로몬의 시대에는 밀려드는 이방 문화 때문에 온 나라가 부패하고 백성은 타락의 길을 걸었다.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시 82:2).

부강한 나라의 특징은 약자를 돌보지 않는 것이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시 82:3~4).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나라가 흔들린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시 82:5).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라는 자부심에 취해 있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시 82:6~7).
그리고 솔로몬의 영광이 빛을 잃기 시작한 때에 이스라엘의 황금과 보화를 노리고 있던 주변의 적들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왕상 11:14).
하닷은 전에 다윗이 에돔을 진멸할 때 애굽으로 도망쳐 바로의 처제와 결혼 하면서 힘을 기르고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자였다. 애굽을 나와 에돔으로 복귀한 하닷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적이 되었다. 또 다윗이 소바를 칠 때에 다메섹으로 도망한 르손은 수리아의 왕이 되어 북방의 위협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안에서까지 솔로몬에 반대하여 대적하는 자가 일어났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왕상 11:26).


언제까지 하려느냐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찬양의 제사를 주도했던 ‘아삽’은 그 영광의 시대 속에 가려져 있던 우려와 근심을 기록해서 남겼다.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고개를 들었나이다”(시 83:1~2).
그는 에돔과 수리아뿐만 아니라 모압과 암몬, 아말렉과 두로, 심지어 앗수르까지 지목 하며 이스라엘을 향해 고개를 든 대적자들을 거명하고 있다. 60세가 된 솔로몬은 이런 위협들을 남겨둔 채 사상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는 기록을 세우고 눈을 감았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잠언’을 유산으로 남겼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잠 1:10).
그가 쓴 ‘잠언’의 제1장부터 제7장까지의 사이에 ‘내 아들아’가 열한 번이나 나오고 있다. 솔로몬은 그의 지혜를 모아 아들의 교육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자식은 아비의 교훈보다 그의 행실을 더 본받는 법이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역시 부친의 교훈보다는 그의 행실을 더 본받았으나 솔로몬의 후궁이 칠백 명이고 첩이 삼백 명이었는데 비해 르호보암의 기록은 그에 못 미쳤다.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대하 11:21).

그가 즉위하자 솔로몬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피신해 있던 에브라임 지파의 수장 여로보암이 백성들의 선두에 서서 새로 왕이 된 그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
그러나 르호보암은 강경파의 의견을 따라 권위를 더 앞세웠다.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왕상 12:14).
왕의 대답을 듣고 성난 민심은 등을 돌렸다.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왕상 12:16).
그리고 백성들은 그 일에 앞장섰던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다.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이가 없으니라”(왕상 12:20).
유다 지파 외에 오직 베냐민 지파만 르호보암 진영에 남았고 나머지 열 지파는 모두 여로보암을 따라 북상했다. 르호보암이 그들을 추격하려 했으나 선지자 스마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했다.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왕상 12:24).
그렇게 해서 결국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하나님이 BC 2091년에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천년을 공들여 BC 1050년 땅 위에 세운 그 자손들의 나라가 불과 120년 만인 BC 931년에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에덴에서 시작된 사탄의 ‘갈라놓기’ 전략이 대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대하 10:19).
BC 931년 북으로 간 열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은 것은 928년 전인 BC 1859년에 애굽에서 그들의 조상 야곱이 ‘장자권 승계’에 관해 언급했던 내용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등 세 자손을 제외시키고 유다 지파의 장자권을 인정한 야곱은 요셉의 차례에서 인간적 편견이 발동했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창 49:24, 개역한글).
요셉의 장자는 므낫세였으나 야곱이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어서 요셉 지파의 장자권을 에브라임이 물려받았다. 그 유언의 권위 때문에 모세도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에게 지휘권을 물려주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고,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에브라임 지파는 오랫동안 그들의 장자권을 주장해 왔다. 그러던 중 유다 지파의 왕이 신망을 잃자 에브라임의 장자권이 되살아난 것이다.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왕상 12:25).
그렇게 해서 새 왕을 따라 북으로 올라간 열 지파는 ‘이스라엘’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고, 남쪽에 남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그들의 나라 이름을 ‘유다’로 쓰게 된 것이다. 남왕국 ‘유다’의 수도는 그대로 ‘예루살렘’이었으나 북왕국 ‘이스라엘’에 서는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이 수도가 되었다.

갈라지면 달라진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수행하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혼자 지냈다. 그런 바울이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책임과 예의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다. 그러나 신앙생활 자체가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본다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 사도 바울이 부부 관계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 분방(分房)하지 말라”(고전 7:5).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하셨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내가 아프면 남편의 가슴이 아프고, 남편이 마음먹으면 아내는 온 몸으로 그것을 느낀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가 한 방에서 지내는 것은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한 방법이고, 사랑을 키워가는 훈련이고, 서로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전 7:3).
따로 지내는 것이 편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바울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b).

부부가 방을 따로 쓰는 것은 이미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끊은 것이다. 방을 따로 쓰더라도 사랑한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다. 따로 자다가 한 쪽이 돌연사를 하는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살아남은 쪽은 평생을 부끄러움 속에 살아가게 된다. 서로 갈라서게 하는 사탄의 전략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갈라져서 멸망한 수많은 집단과 나라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왕상 12:27).
여로보암을 따라간 지파들은 그가 속한 에브라임을 비롯해 열 지파였고, 르호보암 쪽에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등 두 지파만 남았다. 그런데도 여로보암은 자신을 따라온 백성들을 완전히 믿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를 따라온 지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도록 단속하기 위해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세웠다.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왕상 12:28).
레위의 제사장들이 금송아지에 경배하기를 기피하자 레위 지파가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고 남왕국과 다른 날을 북왕국의 절기로 정해 분향하게 했다.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려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과 똑같은 행위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제단에서 분향하는 여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 ‘징조’를 주셨다.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왕상 13:3).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전한 ‘징조대로’ 제단이 갈리지며 재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 사람은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이 일 후에도 여로보암은 돌이키지 않고 누구든지 자원하는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다.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왕상 13:34).
이스라엘 열 지파의 추대로 왕이 된 여로보암은 22년 만에 죽고, 그 아들 나답이 뒤를 이어 다스렸으나 이태 만에 잇사갈 지파의 바아사가 모반하여 그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바아사는 세겜에서 디르사로 도성을 옮겨 24년을 다스렸고, 그 아들 엘라는 이태를 다스리다 시므리의 모반으로 죽었다. 시므리는 모반한지 이레 만에 다시 오므리가 반역하자 자결했고, 오므리는 사마리아를 건축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왕상 16:29).

BC 874년에 즉위한 아합은 분단시대를 대표하는 악한 왕이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왕상 16:30).
아합이 그렇게 된 것은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1~33).
애굽에 들어가 430년간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자손의 고통이 극심해졌던 ‘하나님의 때’가 해방의 ‘카이로스’였다면, 아합 왕이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과 아세라 상을 세우며 14년을 다스렸던 ‘하나님의 때’는 위기의 ‘카이로스’였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앞에서 이미 쓴 것처럼 해방 세대의 선지자 모세는 애굽 군대의 사령관 출신이었고, 분단 시대의 선지자 엘리야는 변경 수비대의 지휘관이었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지도자였으나 엘리야는 길르앗 땅에 은거 하고 있다가 갑자기 아합 왕 앞에 나타나 불길한 ‘징조’를 예언한 사람이었다. 그 후에 하 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왕상 17:3~4).

홍수가 끝나고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할 때에 노아가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 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했다고 했다. 까마귀는 하나님의 ‘징조’를 전하는 전령으로 사용되는 새였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살 때에 그분이 보내 시는 ‘징조’는 대개 불길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신 것도 이스라엘에 위기가 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왕상 17:6~7).†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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