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그루버 칼럼

샬롬을 지키려면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출 23:12a).
앞으로 여러 국가들이 이념적인 혼란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그런 국가 중에 하나이다. 로마 가톨릭 교인이 92%인 베네수엘라의 국민들은 사회주의를 택했다가 혼란과 경제몰락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사회주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7일에는 쉬라고 하셨다. 기독교는 안식일에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소수 민족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지혜로운 민족인 유대인들의 관점은 약간 다르다. 부어지며 세계적인 부흥이 시작되었다. 복의 근원이라는 부르심과 말씀을 맡은 은사가 성취된 것이다.

유대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불을 지피지 말라고 말씀하셨기에 근 6천년 동안 불을 지피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유대인들은 그 만큼 안식일을 문자대로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통 유대교신자들의 이런 경외함을 기독교인들도 배웠으면 좋겠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자신들을 지켰다고 말한다.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서 살면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곳곳에서 소외당하며 천대와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의 말씀을 따라 살며 가정과 신앙 공동체를 지켜내며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조금의 기회만 주어지면 가장 많은 것을 성취해 내어왔다. 그들은 안식일에 가족, 신앙 공동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구약을 읽고 묵상해온 덕에 2천년의 극한 고난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정통 유대인들은 말씀에서 뽑아내는 관점이 개신교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믿음의 조상인 야곱에 대해 유대인들은 개신교 신자들과는 달리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 유대인들은 어린세대에게 삼촌 라반의 양을 야곱이 자신의 것인 양 부지런히 돌본 것처럼 무엇을 하든지 부지런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안식일을 말할 때도 안식일을 근신하며 지키라는 말씀과 함께 6일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유대인들은 출애굽 후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매일 만나를 내려주셨고 그들이 입은 의복과 신발도 초자연적으로 낡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세대가 다 죽기까지 광야를 헤매며 살았다.

심리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연구해본 결과, 살아야 할 이유, 소명의식이나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사계절 삭막한 광야에서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과 신발을 사용하며 살아가야 했던 유대인들은 무슨 목적과 소망을 가지고 살았을까?
광야에서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만나와 옷과 신발을 받으며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부르심과 번영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구하며 성실하고 근면할 때 성취할 수 있다.

사회주의를 경계하라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람들은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원하기에 국가라는 거대 기관이 부모가 되어 책임져주겠다는 말에 쉽게 매혹되는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게 이렇게 많은 책임을 지라고 요구할 때, 그만큼 많은 권리를 국가에게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기독교인은 사회주의는 경제시스템일 뿐 아니라 종교처럼 세계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가 중요하며 전체를 위해 개인은 희생 할 수 있다고 보는 이념이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공산국가 중국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상하이의 화려함은 뉴욕과 비견된다. 그러나 명품으로 휘어 감고 세계를 휩쓸고 다니는 중국인들의 자녀들은 여전히 학교에서 “당이 부모나 형제자매보다 중요하다”, “당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 공산주의 중국은 절대로 당보다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허락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국가가 가족, 신앙 공동체를 대체하기를 원한다. 개인이 국가 혹은 공산당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충성을 하거나 믿음을 주거나 의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유럽식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국민들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사회주의 사회관을 주입시키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가족 공동체와 신앙 공동체 그리고 기독교의 진리를 무너트리는 세계관들이 ‘성 교육’, ‘인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실행된다. 학생들이 성에 대해 일찍 배우면 배울 수록 더 일찍 성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은 이미 확연히 드러났지만 성교육 연령은 낮아져만 가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퓨어 리서치의 연구에 의하면, 혼전 성관계를 갖는 파트너의 숫자와 이혼율은 비례한다. 혼전 성관계가 없고 결혼 파트너와만 성적인 친밀감을 공유한 기독교인들이 가장 이혼율이 낮았다. 성관계 파트너 숫자가 20명이 넘는 사람은 이혼하지 않을 확률이 20% 정도에 불과했다.


사회주의를 경계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부르심을 주셨다.
우리는 그 부르심을 엿새 동안에 자신의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는 과정에서 성취할 수 있다. 우리의 두 손으로 부지런히,
성실히 주님을 섬기고 주어진 본분을 6일 동안 다할 때에
7일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히브리어로 ‘샬롬(안식)’은 영•혼•육이 잘 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 안에서는 이렇게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공동 체와 신앙 공동체를 허물고 기독교 세계관을 파괴하는 교육이 강제 시행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구교도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의 개신교인도 사회주의가 개인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대신 국가가 개인의 짐을 대신 져주는 좋은 제도라고 동조 하고 지지했었다.
국가가 내 삶을 책임져 달라고 요구하려면 국가가 내 삶을 통제하도록 권리도 이양해야 한다. 그런 권리 중에 하나는 종교의 자유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국가들이 한때는 강력한 기독교 국가였지만 지금은 주일을 지키는 교인들이 한 자리 숫자이며 주로 노년층이다.
스칸디나비아 같은 유럽 국가들은 중국처럼 대놓고 당에 충성하라고 교육하지는 않지만 성교육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결혼, 신앙 공동체, 기독교 가치관을 파괴해왔다. 역설적이게도 기독교를 핍박하는 중국 같은 국가에서는 기독교가 부흥했지만, 유럽처럼 성적인 쾌락추구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사회주의 교육 이 행해진 국가들의 기독교는 한없이 쇠락해져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부르심을 주셨다. 우리는 그 부르심을 엿새 동안에 자신의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는 과정에서 성취할 수 있다. 우리의 두 손으로 부지런히, 성실히 주님을 섬기고 주어진 본분을 6일 동안 다할 때에 7일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히브리어로 ‘샬롬(안식)’은 영‧혼‧육이 잘 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번성하도록 지키고 돌보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헨리 그루버 (목사)

‘세상을 걷는 중보기도자’로 알려 져 있는 필자는 18세 때부터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의 우범지역에서 주님과 함께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걷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그가 만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 을 전하고 있다. 그의 삶에는 초자 연적인 이적들이 많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걸으며 기도한다는 사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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