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그루버 칼럼

닭은 울었다, 회개하자

성평등 합법화가 기독교에 주는 위협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닭은 울었다. 산헤드린 법정의 위세에 눌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가 되지 않으려면 교회는 이제 부흥이 아니라 대각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부흥의 때에는 성령이 부어져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회심한다. 영적 대각성의 때에는 성령이 강하게 역사해 사회의 전 구성원 즉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세계관이 바뀐다. 영적인 대각성이 일어나기 전에 심판이 있다. 어떤 국가들은 지금 심판 중에 있다.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도록 모여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무서운 시련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정결케 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집부터 청소하실 것이다. 빨리 얽매이는 무거운 죄 짐을 벗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미국 초기의 정착자들은 퓨리턴들이었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사그라들자 미국은 유럽대륙의 병폐를 그대로 드러냈다. 유럽의 타락한 풍조가 그대로 신대륙에 나타났다. 사회는 부패했고 신대륙 정착민들 중에는 술과 도박, 그리고 폭력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많았다. 정부와 사회는 부패했다. 그런 시기에 죠지 윗필드와 웨슬리 같은 부흥사들이 영국으로부터 건너와서 불을 던진 1차 대각성으로 사회가 변했다. 윗필드와 웨슬리는 영적 각성뿐 아니라 사회변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죠지 윗필드와 긴밀한 교류를 나누며 영향을 받았다.
1차 영적 대각성 속에서 사회변혁이 일어났고 그 과정 중에서 미국의 헌법이 만들어졌다. 영국을 떠나 이 땅에 하나님의 도성을 건축하길 원했던 퓨리턴들이 세운 미국은 소수 독재자가 지배하는 유럽과는 다르게 국민이 권력을 갖도록 헌법과 정부체제를 만들었다. 미국은 1차 대각성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가장 성경말씀에 근접한 법체계를 가진 국가로 탄생했던 것이다.
그 후로도 미국은 국가적 위기의 때마다 영적 대각성을 통해 사회변혁을 이루며 강성해져 왔다. 지금 미국은 4차 대각성을 기다리고 있다. 역사상 유례없는 혼돈의 시기인 21세기에는 전 세계에 영적 대각성이 필요하다.

혼돈의 시기
가족 드라마도 이제는 동성커플은 성이 같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갈등은 적은 것으로 그려지고, 이성간 커플은 끊임없는 갈등과 외도로 문제가 많은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성평등 운동을 주도하는 버클리 대학의 쥬디스 버틀러 교수는 동성애자이다. 남성정장 차림에 짧은 헤어스타일을 한 그녀는 대중이 동성애에 자주 노출되도록 만들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동성애자들은 처음에는 동성혐오를 방지해달라고 했지만, 이제는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전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와 학계와 언론과 방송이 적극적으로 쥬디스 버틀러의 말에 동조하고 있다. 동성애 확장을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며 이들에게 꽃길을 열어준다.

그 반면 기독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고 동성애가 부도덕하다고 말하면 감옥에 가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고 거액의 소송에 휘말린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혼돈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매우 정교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어떤 주의나 주장 등을 대중에게 널리 설명하여 이해와 동의를 얻으려는 활동)를 통해 가능해졌다. 언제나 할리우드와 주류 방송, 패션계가 발맞추어 움직인다. 먼저 화장한 남자들, 여자 같은 남자 모델들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는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은 동화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게이 성향을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지면 다음에는 드라마에서 잘 생기고 성격도 좋고 유능한 동성애자가 극중 인물로 등장해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중의 관념을 바꾼다. 전 세계에서 이런 경향이 발맞추듯이 일어나기 때문에 자연적인 시대의 풍조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대중의 동성애에 대한 저항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면 동성애를 이성애보다 더 멋진 관계로 포장하는 드라마를 만든다. 거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이런 스토리를 가진 드라마를 제작시켜 성공하게 만들고 나면 정치인들을 동원해서 동성결혼 합법화 같은 법을 만든다. 동성애는 단지 적 그리스도적인 세력이 서구의 유대 기독교 세계관을 파괴하려고 도입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그 뒤에는 미국 주류방송과 할리우드, 아카데미아를 소유하고 있거나 그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있다. 다시 말해 20세기와 21 세기에 일어난 반기독교적인 흐름은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반기독교 세력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유대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도전은 동성결혼처럼 성경말씀에 적극적으로 도 전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많은 경우 모호하게 일어난다. 어쩌면 그 모호한 도전을 말씀으로 분별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그 모호한 도전이 기독교인들에게 더 광범위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가정이 회복되는 사회변혁이 일어나길
1970년 초까지가 미국의 황금기였다. 가장이 혼자 벌었어도 미국 가정은 넉넉했고 적금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남녀가 일하지만 1970년대보다 실질적으로 가난하다. 미국에서 그들은 부부가 같이 벌면 미국이 더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초 여자들은 중학생인 자녀를 두고도 일하러 나가는 것을 꺼렸다. 자녀들이 학교에 오면 엄마가 가정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1970년 여성들이 사회진출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을 갖게 된 이후 청소년 범죄율과 이혼율 이 수직적으로 높아졌다. 거기에 몇 십 년 지나보니 미국 가정은 맞벌이 때보다 더 가난해졌다고 한다.

로마서 말씀으로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하는 것은 쉽지만 결혼과 출산, 남녀의 역할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현대 젊은이들에게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 세계 선교도 필요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다면 자국의 교회도 지키지 못한다. 이미 영국에서 신생아의 80%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다. 가장 흔한 아기 이름은 모하메드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영적 대각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점검하고 회개해야 한다. 많은 기독교 인들이 1970~1990년대 가족계획을 하나님의 뜻처럼 받아들였다. 그런 사실부터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시기 전에 가정을 만드시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시기 전에, 그리고 국가를 만드시기 전에 아브라함의 가정을 부르셨다. 가정은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기관이다.
IMF가 아프리카로 가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시켜야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하자 우간다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위해 IMF의 자금지원을 포기했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우간다를 칭송했다. IMF는 1970년대부터 가난한 국가들에게 가족 계획 정책을 받아들여야 원조를 주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어떤 개신교 교회도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다고 저항하지 않았다.
그 결과 거의 모든 개신교 국가들이 두 자녀, 한 자녀를 낳지 않으면 인구가 폭발해버릴 것이라고 국민들을 교육했다. 인구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들의 권고를 충실히 받아들인 국가는 앞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나는 교회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가정을 세우는 것이라고 믿는다. 젊은이들이 이기적이고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삶 대신, 가정회복을 하나님이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대 사명으로 받아들이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다가오는 영적인 대각성 중에 그런 사회변혁이 일어났으면 한다.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를 우대하고 세제혜택을 주는 대신, 한 자녀 가정과 미혼모들이 우대받는다면 가정은 쉽게 깨질 것이다. 학교교육이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과격한 페미니즘을 가르친다면 가정은 깨질 수밖에 없다. 영적 대 각성으로 적그리스도적인 가르침과 정책이 대세인 현실이 바뀌기를 소망한다.

율법적으로 여성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하기 전에 교회 안에 아내를 위해 희생하며 부드럽게 사랑하는 남편과 남편을 존중하는 아내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면 한다. 자녀들에게 결혼이 좋은 것이라는 마음이 들도록 사랑으로 충만한 부부간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선교와 전도만큼 중요하지만 어쩌면 더 많은 희생과 헌신과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타인과 이렇게 하나가 되는 과정은 진정한 자아의 죽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헨리 그루버 (목사)

‘세상을 걷는 중보기도자’로 알려 져 있는 필자는 18세 때부터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의 우범지역에서 주님과 함께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걷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그가 만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 을 전하고 있다. 그의 삶에는 초자 연적인 이적들이 많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걸으며 기도한다는 사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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