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초원이나 정글에서 태어난 새끼들의 삶이 주변 환경의 인식과 파악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사람이 쓰는 소설이나 드라마의 서두 역시 그것이 전개되는 지역의 모습이나 지형의 설명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호남 좌도 제주군은 동으로 일본해협 서으로 조선해협 연화부 수형국으로 남해 중에 돌출하니 그 중에 한라산은 도내 제일 명산이오 탐라 고국 주방이라 백천이 조정하고 만악이 경수하여 산성 신수 정기로 애랑이가 생겨났다.”
이것은 조선 후기의 한글 소설 <배비장전>의 서두이다. 제주 목사를 따라 부임한 비장이 기생 애랑의 속임수에 빠져 궤짝 속에 갇히고, 바다에 던져진 줄 알았는데 동헌 마당으로 옮겨져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궤짝을 바다에 빠뜨린다는 설정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를 무대로 삼은 것이다. 김동리의 대표작 <사반의 십자가> 역시지형의 설명으로 시작된다.
“헤르몬과 언티 레바논 두 산에서 발원하는 요단강 물은 동쪽으로 목마른 광야를 끼고, 서쪽으로 ‘꿀 흐르는 땅’ 가나안을 안으며, 북에서 남으로 흘러 ‘죽음의 바다’ 염해에 이른다. 물살이 빠르고, 언덕이 높고, 돌층대가 험하여, 일반적으로 뱃길이 좋은 편은 못되나, 상류에 있는 세 개의 호수, 그 가운데서도 그네들이 보통 갈릴리 바다라고 일컫는 게네사렛 호수에만은 고기잡이로, 화물 운송으로, 그리고 주민의 교통으로 항상 많은 배들이 떠 있었다.”

너는 떠나라
천지 창조에서 대홍수와 바벨탑에 이르는 서막을 빼면 창세기의 본격적 드라마는 ‘열국의 아비’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냥꾼 니므롯이 셈의 성들을 점령한 후 셈의 자손들은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신세가 된다. 유브라데 강 상류의 ‘우르파’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따라 메소포타미아로 갔다가 다시 유랑의 길에 나선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창 11:31).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하란에서 그를 불러낸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주었던 ‘복’을 그에게도 준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 개역 한글).
하나님은 그에게 목적지를 지정해주지 않았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히 11:8) 날마다 다음 행선지를 지시받아야 했다. 그가 하란을 떠난 것은 75세 때였고, BC 2091년이었다. 그는 결국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세겜과 벧엘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애굽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북상하여 아모리 족속에 속하는 마므레의 땅에 겨우 거처를 얻어 살게 된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 11:13).
우르파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우르로, 다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그리고 애굽까지 내려갔다가 온 아브라함의 유랑은 실로 4천km가 넘는 대장정이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유랑을 시켰을까? 당시 인류 최고의 문명권은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이었다. 하나님은 두 지역을 다 밟아보고 그를 연결하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그에게 비로소 이르신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개역 한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먼저 지형을 파악하게 한 후에 그가 할 일을 지시한 것이다. ‘보이는 땅’이란 장차 그의 자손 ‘히브리인’들이 거주할 지역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모든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경략을 보여준 것이었다. 아브라함 당시에도 아직 ‘지도’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바벨론과 애굽을 왕래하는 대상(隊商)의 기억 속에만 감추어져 있을 뿐이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고대인들이 주변 지역을 기억하려고 만든 바벨론과 애굽의 지도 외에도 에스키모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만든 지도, 타이티 섬의 토인이 나무 조각으로 만든 지도와 마아샬 군도의 토인들이 야자 잎과 조개껍질로 만든 해도가 있다. BC580년경에 그리스에서 초보 단계의 세계지도가 만들어졌고, BC 320년 처음으로 경위선의 개념이 도입된 지도가 작성되었다.
BC 150년경에 히파르코스(Hipparchos)에 의해 최초의 투영법인 ‘평사도법’이고안되었다.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천문학자이며 지리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AD 120~150)는 ‘본느도법’의 경위선에 가까운 기법으로 진보된 세계지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후로는 성경을 오해한 교회의 천문학적 편견으로 지도의 발달이 중단된 것이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욥 26:7, 개역 한글).
땅을 공간에 달았다는 것은 그것이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가르쳐준 것이다. 또한 그것은 땅이 구(球)임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욥기에는 중세의 교회가 땅이 평면이라고 믿는 근거가 되었던 다른 구절도 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4).
교회는 땅이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했으므로 평면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 대목은 한나의 기도에도 나온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 2:8).
그러나 오늘날에는 땅이 실제로 ‘기초 위에’ 있음을 다 알고 있다.
“지각은 물 위에 뜬 얼음덩이와 같이 여러 개의 ‘플레이트(板)’로 이루어져 그것을 떠받치는 ‘맨틀’ 위에 얹혀 있다. 이들 플레이트가 서로 밀치고 밀릴 때 그 충격이 지표에 전달되어 지진이 발생한다.”(‘미국 지질연구소’ 클리먼트 시어러)

알게 하소서
성경을 권력의 도구로 삼는 자들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절대적이라고 고집하여 하나님을 난처하게 해 왔다. 사람이 에덴을 나온 이후로 자기 생각을 고집하여 하나님의 뜻과 대립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성직자보다는 오히려 의문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사람이 더 그분과 가깝고, 더 거룩한 자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욥 7:17~19).
그가 질문을 계속하자 하나님의 음성이 폭풍 가운데서 들린다.“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 38:2).
하나님은 욥기 38장부터 41장까지 129절에 이르는 질문을 거꾸로 욥에게 쏟아 붓는다. 그에 놀란 욥이 꼬리를 내린다.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그렇게 말해 놓고서도 욥은 다시 질문을 계속한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42:4).
욥뿐만 아니라 온갖 고난과 수모를 당해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한 선지자들도 실은 모두가 ‘질문의 대가’들이었다.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무슨 까닭이니이까”(렘 12:1).
선지자 하박국도 마찬가지였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그러므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이어받아 태양 중심의 우주관으로 지동설을 발표한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그 이론을 체계화한 케플러(1571~1630) 그리고 천체 관측으로 그것을 증명한 갈릴레이(1564~1642)는 그들을 정죄하고 심판한 성직자들보다 더 창조주에 가깝고, 하나님의 뜻을 더 이해한 자들이었고, 더 진실한 예수의 제자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인간이 성직자들의 성경 해석대로 만든 지도의 대표적인 것이 영국 헤리포드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헤리포드 지도’이다. AD 1300년경 제작되었다는 이지도는 ‘TO 도’라고 불리어진다. 쟁반 모양(O)의 육지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육지는 T자 형태로 나누인 세 대륙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 대륙은 하나님이 노아의 세 아들에게 나누어준 땅을 의미한다.
“중세 유럽의 지도는 실제 모습보다는 신이 창조한 세상에 더 가깝게 그려져있다.”(KBS ‘문명의 기억 지도(3)’ 2012. 3. 10.)
당시 성직자들의 ‘가이드라인’은 창조주가 사람에게 남겨준 ‘영적 지도’를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율법’을 완전케 한 ‘진리’를 전하라고 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그러나 중세 성직자들은 자기 생각에 묶여 율법을 완전케 하는 진리(마 5:17)를 증거할 수 있는 실력이 없었다. ‘TO 도’에서는 동쪽이 위에 있다. T 형태로 나뉘어진 땅의 오른쪽에는 함의 아프리카가, 왼쪽의 위에는 셈의 아시아가 있고 그 아래쪽에는 야벳의 유럽이 있었다. 세상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그려져 있고, 맨 꼭대기 즉 동쪽 끝에는 에덴 동산이 있다.
“유럽 이외의 다른 대륙 즉 셈과 함의 땅에는 반인반수의 동물을 비롯 황당무계한 괴물들이 그려져 있다.”(KBS ‘문명의 기억 지도(3)’)
그러나 동방 교역이 시작되고 마르코 폴로의 견문록에서 ‘사제왕 요한’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동방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AD 1488년 바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에 돌기둥을 세우고 돌아오자 포르투갈은 베네치아 지도제작소에 세계지도의 제작을 의뢰했다. 그리고 AD 1495년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와 희망봉을 그려 넣은 ‘프라우마로 지도’가 제작된 것이다.
다시 AD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 항로를 개척하고 돌아온 후 포르투갈은 AD 1502년 아프리카와 인도 항로까지 포함한 세계지도를 제작했다. 그 정보를 알게 된 이탈리아는 스파이 칸티노를 포르투갈에 파견하여 그 지도를 빼냈다. 지금 이탈리아 모데나의 에스텐세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그 지도를 ‘칸티노 세계지도’라고 한다.
현재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평면형 세계지도는 AD 1569년 네덜란드의 지도학자 메르카토르(1512~1594)의 도법에 의한 것이고, 지형도 제작에 널리 쓰이는 등고선은 AD 1729년 역시 네덜란드의 크르키우스가 안출한 것이다. 소설 <항해지도>의 작가 아르투로 레베르테는 그 소설의 권두에 자크 뒤피의 ‘뱃사람’에서 지도의 의미가 잘 표현된 대목을 내놓았다.
“해도(海圖)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구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해도는 하나의 판화이고 역사의 한 페이지이며, 가끔은 한 편의 모험소설이기 때문이다.”†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