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칼럼

지금은 꽃씨를 거두어야 할 때

어느덧 가을이 완연하다. 어디를 가도 어지간한 거리에는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코스모스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어느새 들녘에는 은빛 갈대들이 손짓한다. 산에는 사랑하는 님의 입술 같은 단풍이 물들게 될 것이고… 그때 석양빛이 비추는 가을 길을 걷노라면 그리운 고향생각, 사랑하는 님의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들길을 바람개비를 돌리며 달리던 추억, 동무들과함께 코스모스 길을 걸으며 노래를 부르던 그 행복했던 나날….
이렇게 세월은 강물처럼 무심히 흘러가고 언젠가 우리 마음의 정원에도 낙엽이 떨어지고 달빛 아래 속삭이던 갈대들마저 잠들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사랑은 가을처럼, 그리움은 갈대처럼’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흘러간 세월을 반추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를 상념의 오솔길로 이끄는 그윽한 계절, 가을이 왔다.
잠 못 드는 기나긴 가을밤이 되면 밤새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시와 노래와 별빛 같은 꿈들을 이야기하며 촛불을 끄지 않은 채 사랑을 나누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가을의 상념에만 잠기면 안 된다. 감상적 사색의 바람에만 흔들려서는 안 된다. 김현승 시인의 말대로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는 때를 기다려 더 깊은 기도를 드려야 할 때이다. 뿐만 아니라 가을에는 꽃씨를 받아야 할 때다.
옛날 어린 시절에 가을이 되면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꽃씨 등을 받았지 않았는가. 오늘 우리도 가을에는 꽃씨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꽃씨를 돌아오는 봄에 심어야 한다. 나는 이러한 마음을 담아 ‘꽃씨’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언제부턴가 / 꽃씨가 사랑스럽습니다 / 그래서 마음의 뜨락에 꽃씨를 심습니다 / 세상 가득 향기로 덮고 싶기에 / 이젠 꽃을 꺾어 / 선물하지 않으렵니다 / 그 보다 / 꽃씨를 나누어 주고 / 그 마음에 뿌려주기로 했습니다 / 더딜지라도 / 코끝에 물씬 풍기는 향기 없을지라도 / 한 아름 안겨주는 화사함 덜할지라도 / 오늘도 꽃씨를 뿌립니다 / 마음의 밭을 일구어 / 열심히 꽃씨를 뿌립니다 / 그날 /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서 / 향내 가득하고 / 이 세상 꽃들로 가득하게 될 때를 기다리며 /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 / 나는 이 꽃씨들을 천국에 가져가렵니다.”

역설적 꿈을 외쳐라 우리도 이제 꽃씨를 거두고 뿌려야 할 때이다. 이청준의 <꽃씨 할머니>라는 이야기를 보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과부 할머니가 나온다. 그녀는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자녀 하나 낳지 못한 채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깊은 고독을 느끼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는 왜 자녀를 주지 않고 남편을 일찍 데려갔습니까? 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말입니까? 저도 정말 보람된 일,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그 할머니의 기도에 이렇게 응답해 주셨다.
“딸아, 너는 남편도 없고 생산능력이 없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꽃동산을 만들 능력이 있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희망의 꽃씨를 뿌리는 은혜를 주었지 않느냐.”
그 이후부터 할머니는 가는 곳마다 꽃씨를 뿌렸다. 그래서 그 할머니가 뿌리는 꽃씨로 인하여 주변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났다는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우리도 그 할머니처럼 꿈의 꽃씨, 희망의 꽃씨를 거두어 뿌려야 할 때이다. 한국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이 훼손되고 이미지가 땅바닥까지 추락하여 온갖 비난과 조롱을 당하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희망의 꽃씨를 뿌리며 역설적 꿈을 외쳐야 한다. 굳이 안 된다 하지 말자. 더 이상 비관적인 말을 하지 말자. 옛 말에 말은 씨가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니, 말은 말(馬)이 되어 우리의 삶을 말대로 이끌어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말의 꽃씨부터 많이 뿌려야 한다. 그럴 때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다행히 최근에 한기총과 한교연이 하나 된다는 낭보를 접하고 밥맛이 생기고 며칠 동안 잠을 잘 잔 적이 있다. 그만큼 나는 나누어지고 찢겨진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밥맛이 떨어질 때도 있고 잠을 못 잔 적도 있다. 부디 한기과 한교연이 하나 되어 함께 한국교회의 대표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대표성을 지닌 연합기관이 한국교회의 자연환경과 생태계에 많은 꽃씨를 뿌려 주었으면 좋겠다. 이미 황폐해지고 깨져가고 있는 황무지 같은 생태계에 말이다. 그런 곳에도 다시 꽃씨를 뿌리면 한국교회의 주변 생태계가 다 꽃밭이 되지 않겠는가. 마치 황무지에 장미꽃이 피듯이.
올 가을에는 교회마다 총회마다 정말 모든 상처를 꿰매고 다시 봉합하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화해하자. 저 들녘에 피어나는 가을꽃들처럼, 그리고 저 가을들녘에서 꽃씨를 거두어 내년 봄에 한국교회를 위해서 꽃씨를
심어보자. 그래서 다시 한국교회 안에 사랑과 용서, 화해의 향기로운 꽃이 만발하게 하자. 그 하나 된 힘으로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에 맞서서 승리하자.
가을이다. 지금은 꽃씨를 거두어야 할 때다. 그 꽃씨를 손에 쥐고 한 마음으로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향기로운 봄의 들녘을 기다리자.†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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