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칼럼

친밀한 교제

친밀한 교제의 가장 큰 위험은 상처를 받는 것이다.
그래도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상처를 받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더욱 친밀한 교제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상처는 오직 큰 사랑을 통해 치유된다.


뿌리 깊은 영성은 관계 속에서 무르익는다. 참된 신앙은 관계 속에서 깊어진다.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 안으로 부르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밀한 공동체 안에서 양육하 셨다. 친밀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세상의 교제와는 다르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세상의 교제와 비교할 때 그 깊이가 다르며 그 차원이 다르다. 목표하는 바가 다르다. 그리스도인의 교제의 중심에는 성삼위 하나님이 계신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의 교제는 거룩하다. 거룩 하신 성삼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놀라운 특권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기 위해 부르셨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사도 요한은 우리의 사귐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말했다(요일 1:3~4). 우리의 사귐은 누림이다. 누림을 통한 기쁨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교제의 특징은 복음과 더불어 교제하 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 1:5, 개역한글).
기독교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다. 또한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 나누는 관계다. 우리가 추구하는 영성은 관계의 영성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공동체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셨다.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함께 일하고 계신다.
인간의 내면에는 친밀한 교제에 대한 깊은 욕구가 있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은 소외감이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를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부르셨다.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원리를 배울 수 있다.

첫째, 가르침을 받은 말씀으로 서로 교제하도록 하라.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님께서 충만히 임하시면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는 먼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했다(행 2:42). 사도의 가르침의 핵심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셨다. 곧 복음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배우고 경험하면서 교제했다.

둘째, 음식을 나눔으로 서로 교제하도록 하라. 예수님과 제자들의 교제 속에는 음식이 있었다. 또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교제 속에도 음식이 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떡을 떼며 음식을 먹으면서 교제했다(행 2:42, 46).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냥 음식을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친밀한 교제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한 가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음식에는 몸을 위한 음식뿐만 아니라 신령한 음 식이 있다. 신령한 음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예수님의 성찬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육신을 위한 것이든, 영혼을 위한 것이든 그 배후에는 희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생명의 원리 중에 하나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우리를 대신해 서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밥상공동체에서 먹는 음식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요리들이다. 채소와 고기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것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영혼의 신령한 양식과 음료를 제공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식탁의 교제는 성스럽다.
밥통이 열려야 소통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음식은 마음을 열어주는 은총의 도구다. 음식은 우리를 치유한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준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치유하고 회복시키시기에 주님은 디베랴 호숫가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셨다.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조반을 먹으라”고 초청하셨다. 예수님이 예비하신 식탁과 그 식탁의 교제를 통해 베드로의 상처는 치유되었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었다. 식탁은 친밀한 교 제의 장소다. 우리는 식사할 때 무장을 해제한다. 아름다운 가정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는 밥상공동체임을 잊지 말자.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서로 교제하도록 하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교제했다(행 2:47). 또한 함께 기도함으로 교제했다(행 2:42). 하나님을 찬양하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예배다. 그리스도인의 교제 속에는 찬양이 있다. 신령한 노래가 있다. 감사가 있다. 우리가 예배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 간다.
그리스도인의 교제에는 목표가 있다. 그것은 영혼 구원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을 때 많은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왔다(행 2:47).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친밀한 교제 를 나누기 위해 공동체에 들어 왔다가 상처를 받았는지 모른다. 친밀한 교제의 가장 큰 위 험은 상처를 받는 것이다. 그래도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상처를 받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더욱 친밀한 교제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상처는 오직 큰 사랑을 통해 치유된다.
예수님도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중에 상처를 받으셨음을 기억하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중에 버림받으셨다. 거절당하셨다. 배신당하셨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우정의 관계는 시련과 역경을 통과 하면서 더욱 친밀해졌다. 먼저 예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하자. 그리고 성삼위 하나 님 안에서 성도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더욱 깊은 영성을 추구하도록 하자.†

강준민 (목사)

LA 새생명비 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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