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⑭|지혜로운 마음을 주소서

솔로몬은 다윗 왕이 50세가 되었을 때 태어났다. 다윗에게는 헤브론에서 낳은 여섯 아들이 있었고 예루살렘에서 12지파의 왕이 된 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본명: 밧수아)를 왕비로 맞아들여 낳은 아들은 시므아, 소밥, 나단 그리고 솔로몬이었다.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대상 3:5).
그 외에도 역대기에 기록된 이복 형제 아홉이 더 있었다. 모친의 이름이 기록된 형제들 중에서는 솔로몬이 거의 ‘막내’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덟 형제의 막내였던 다윗이(삼상 17:14) 역시 자신의 막내 아들로 후계자를 삼은 것 일지도 모르나 성경에는 그가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은 이유를 적어 놓았다.
“여호와께서 내게 여러 아들을 주시고 그 모든 아들 중에서 내 아들 솔로몬을 택하사 여호와의 나라 왕 위에 앉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려 하실새 내게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 그가 내 성전을 건축하고 내 여러 뜰을 만 들리니 이는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아들로 삼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임 이라”(대상 28:5~6).

그러나 다윗의 이 말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과 좀 다르다.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삼하 7:12~13).
여기서 ‘네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 것이며(사 53:10) ‘내 집’은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이 신학적 해석이다. 기록에 보면 다윗이 밧세바에게 들어가 동침하여 솔로몬을 낳았을 때 하나님은 그 이름을 ‘여디디야’로 지어 주셨다.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 하셨기 때문이더라”(삼하 12:25).
그러나 다윗은 아들의 이름을 그 ‘여디디야’가 아닌 ‘솔로몬(평강의 사람)’으로 불렀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네 씨’가 ‘평강의 사람’(사 9:6)이라고 일러 주셨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솔로몬이 남긴 치적은 모두가 아는 대로 명암이 교차되고 있다. 그래서 잠시 솔로몬의 성장 과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다윗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솔로몬이 겪은 첫 번째 충격은 이복 형 압살롬의 반란이었다.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삼하 15:13).
압살롬은 그 누이 다말을 욕보인 이복 형 암논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다윗은 일부 측근과 가족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요단 건너편의 마하나임에 이르렀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압살롬은 반란의 성공을 자축하며 다윗이 남겨두고 간 열 명의 후궁들과 백성들 앞에서 동침했다. 압살롬은 그 후 피신한 다윗을 추격하다가 요압 장군에게 살해당했고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복귀했다.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삼하 20:23, 개역한글).

솔로몬의 휘장
압살롬이 누이를 겁탈한 이복 형 암논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에 들어가 부친의 후궁들을 겁탈한 것과 다시 부친을 추격하다가 요압 장군에게 살해당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경고대로 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솔로몬이 열한 살 때였으니 그런 소문을 다 들었을 것이었다.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잠 6:32~33).
솔로몬은 후일 발표한 ‘잠언’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아마도 열한 살 때에 겪은 충격을 메모해 두었다가 ‘잠언’을 쓸 때 인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솔로몬은 또 열일곱 살 때에 한 번 더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된다. 다윗이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싶어 인구조사를 했을 때 하나님이 다시 진노하여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것이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
모세의 때로부터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지시가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었다. 군대장관 요압이 이를 말렸으나 듣지 않은 채 그대로 밀어붙였던 다윗은 뒤늦게 이를 후회했으나 이미 늦어서 선지자 갓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었다.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대상 21:10).
하나님이 내 놓으신 세 가지 옵션은 ‘삼년 기근’ ‘석 달 패전’과 ‘사흘 역병’이었다. 다윗은 긍휼이 크신 하나님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한다면서 ‘사흘 역병’ 쪽을 택했다. 그러나 그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대상 21:14).
열일곱 살이었던 솔로몬은 사흘 동안 칠만 명이 죽어 나가는 큰 참상을 목격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대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가서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심으로 역병이 멈추었다. 그리고 다윗이 여부스 사람 오르난에게 금 육백 세겔을 달아주고 산 타작마당은 후일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터로 사용되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왕상 1:1).
그의 시종들이 왕을 위해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해 왕의 품에 누워 왕을 따뜻하게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여,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서 아리따운 ‘동녀(童女, 히: 얄르따)’를 구하더니 ‘수넴 여자 아비삭’을 데려왔다.
“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왕상 1:4, 개역한글).
다윗이 70세까지 살았으므로 동녀 아비삭을 데려온 것이 그가 68세쯤 되었을 때라고 본다면 솔로몬은 19세쯤 된 시기였다. 왕궁의 화려한 여인들만 보아온 솔로몬의 눈에 시골에서 데려온 어린 소녀가 신기하고 인상 깊게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후일 왕이 된 솔로몬은 ‘노래 중의 노래’ 즉 뮤지컬 ‘아가(雅歌)’를 만들게 되는데 이 ‘아가’의 히로인이 바로 ‘수넴 여자 아비삭’일 가능성이 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아 1:5).
솔로몬은 이 뮤지컬의 히로인 ‘술람미 여인’의 얼굴이 거무스름한 것은 포도원에서 일 하며 햇볕에 그을린 탓이라고 했다(아 1:6). 학자들은 ‘수넴 여인(Shunammite)’이 자음변화에 의해 ‘술람미 여인(Shulammite)’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수넴’은 포도의 명산지 인 ‘이스르엘’의 성읍 이름이다. 그렇다면 ‘술람미 여인’이 ‘목동’으로 등장하는 솔로몬의 신부가 된다는 ‘아가’의 내용은 무엇인가?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아 4:9, 개역한글).
‘아가’를 잘 읽어보면 한 목동과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결국 그 결실을 맺지 못하는 애절한 판타지로 끝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포도원에서 일하는 ‘술람미 여인’을 만난 ‘목동’은 자신을 ‘사론의 꽃(Rose of Sharon)’으로,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Lily)’로 표현하고 있다(아 2:1~2). 처음부터 뭔가 순탄치 않은 사랑이 시작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아 2:5, 개역한글).
그들은 서로를 안아주며 속삭이는 상상도 해 보고, 꿈속에서 사랑하는 자를 찾아 헤매기도 하며, 때로는 아주 에로틱한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목동에게 그 술람미 여인은 ‘금단의 여자’였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아 4:12, 개역한글).

문을 열어다오
여인은 잠결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아 5:2, 개역한글).
여인이 놀라서 일어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그가 물러간 뒤였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아 5:6, 개역한글).
왕궁의 솔로몬으로 돌아온 목동은 안타까워 부르짖는다.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 뿐이로구나”(아 6:8~9, 개역한글).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이 놀라운 사랑의 판타지는 결국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애절한 결말을 맺는다. 목동의 뜨거운 사랑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포도원으로 돌아간 술람미 여인은 그 목동을 여전히 사모하며 탄식의 나날을 보낸다.
“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아 8:1~3).
그리고 그 애절한 사랑의 판타지는 관객들의 가슴속에 오래 남는다.
“너는 나를 인(印)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찌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6~7, 개역한글).
솔로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수넴 여자 아비삭’이 왕궁에 들어왔을 무렵 이스라엘은 또 한 번 큰 사건을 겪는다. 늙은 다윗 왕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택한 것을 알게 된 학깃 소생의 아도니야가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의 지원을 업고 반기를 든 것이다. 평소 왕의 심기를 헤아리고 있던 선지자 나단이 왕에게 들어가 사태를 보고했다.
“이것이 내 주 왕께서 정하신 일이니이까”(왕상 1:27).
다윗의 마지막 명령이 하달되었다.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하고, 외인부대의 지휘관 브나야를 보내 반란을 진압하게 한 것이다. 반란은 진압되고 솔로몬은 왕이 되었다. 다윗이 죽어 장사된 후 아도니야가 밧세바 태후에게 와서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청했다. 모친에게 그 말을 들은 솔로몬은 브나야 장군을 보내 아도니야를 죽였다.
“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을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왕상 2:35, 개역한글).
스물한 살에 왕이 되어 정국을 수습한 솔로몬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 애굽 왕 바로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고(왕상 3:1) 흔들리던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다. 그날 밤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솔로몬은 먼저 그분이 사랑하셨던 다윗의 이름을 내세웠다.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왕상 3:6).
하나님의 마음이 아직 다윗의 기억에 잠겨 있을 때에 솔로몬이 말을 이었다.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왕상 3:7~8).
솔로몬은 비로소 그가 바라는 것을 말씀드린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개역한글).
솔로몬의 그 소원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12~13, 개역한글).
과연 솔로몬은 그 지혜가 동양과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 ‘잠언 3천’과 ‘노래 일천 다섯’을 남겼고 식물에서 동물에 이르기까지 막히는 것이 없어 천하의 모든 왕들이 그의 지혜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는 부친 다윗이 준비한 설계와 자재로 성전을 건축하고 언약궤를 옮겨와서 장차 교회를 세울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다.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왕상 8:48~50, 개역한글).†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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