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⑧|우리를 위해 예비하시고

우리를 위해 예비하시고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랑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고, 아름다운 포도원에서 사람과 함께 살기를 원하셨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등지고 그분을 떠났어도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사람이 금단의 열매를 먹고 떠나는 쪽을 선택하자 하나님은 그분이 선택한 사람과 동행하시며 그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하셨다.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시 89:3).
하나님이 그 택하신 자와 맺으신 언약은 개인에 관한 것이기도 했으나 그 사이에서 발생한 관계와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모든 사람들을 위해 행하실 큰일에 대한 예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선택 받은 자기네 조상과 그 후손들에 한정된 계약과 율법이라고 편협하게 해석하여 장차 하나님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그분의 사랑을 완성하시려는 큰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하나님은 홍수 이전에 ‘에녹’을 데려가심으로 이 땅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 자의 예표가 되게 하셨고, 홍수 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을 택하여 홍수를 건너게 하심으로 역시 구원받는 자의 예표로 삼으셨다. 그와 마찬가지로 홍수 이후에도 ‘셈’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게 하셨고, ‘에벨’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야 할 ‘양자된 자’(롬 8:15)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예표가 된 사람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히 11:8).
부르심을 받아 나그네 길에 나선 아브라함의 키워드는 ‘순종’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들이 생명의 근원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 다시 ‘순종’의 훈련을 시작하셨고 그것을 통해 생명의 대역전을 계획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과연 사람 중의 누가 이런 지시를 받고 응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사람이 그 자식을 번제로 바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행하는 관습이었다.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 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8:21).
그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황당한 지시를 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요구 속에는 그분의 심각한 계획이 들어 있었다. 의인에게 복을 주고 죄인에게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공정거래법’에 의하면 죽음의 길을 택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 아들을 그냥 보내실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그의 귀한 독자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그 대가로 독생자를 내어 주실 수가 있었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분의 심각한 제의를 거절한다면”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을 택하여 오랜 ‘순종’의 훈련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브라함처럼 믿음 있는 사람을 또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반응을 기다리며 긴장하고 계실 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 22:3~4).
종들을 나귀와 함께 대기하도록 한 그는 아들 이삭에게 번제 나무를 지운 다음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지시된 장소를 향해 떠났다. 아들 이삭이 물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아들에게 대답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
지정된 장소에서 아들을 결박한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그를 찌르려 할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급히 그를 제지했다. 그것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역사적 거래’가 성립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려 있는 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해 번제로 드렸고, 그곳을 ‘여호와 이레’라 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이었다. 그는 인간이 불순종에서 온 죽음을 순종으로 이긴 역전의 예표가 되었다.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 22:17).
그리고 이 사건으로 정작 ‘순종’의 예표가 된 사람은 이삭이었다. 당시 20대의 건장한 청년이었던 이삭은 아버지를 밀치고 거부할 수 있었는데도 아버지의 믿음을 알았기에 순종하여 결박을 받았다. 번제 나무를 지고 산에 오른 이삭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 22:18).
그는 곧 자신을 드려 구원을 이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 것이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히 5:8~10).

이삭의 아들 야곱은 형을 피해 밧단아람에 가서 살다가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의 형 에서가 4백 명의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곱은 얍복 나루에 이르러 모든 가족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았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창 32:24~25).
날이 새려할 때 그가 가려 하자 야곱이 그에게 매달렸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그 사람이 야곱의 이름을 묻더니 그에게 말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8).
이렇게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했던 야곱은 후일 예루살렘 동쪽의 감람산에서 땀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했던 분의 예표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예표들을 모세에게 일러 주시며 그와 동행하셨고 모세는 그분의 뜻을 온전히 알았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그리고 모세에게 보여 주신 모든 예표들은 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신 것이기도 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40).

그리스도를 향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모든 비밀을 전해들은 모세는 홍수 이전의 에녹과 홍수를 통과한 노아, 그리고 홍수 이후의 셈과 에벨, 또 장래 일의 예표로 선택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를 받아 들으며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가 만난 그분의 두 번째 능력은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섰을 때 마라의 쓴 물을 고친 ‘여호와 라파’ 즉 치료하시는 여호와였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출 15:25).
그 나무 가지를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다. 그 나무는 바로 장차 인간의 모든 잘못을 고치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모세는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알게 하신 것은 자신에 대한 그분의 사랑 때문이었음을 깨닫고 40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 자손에게 당부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그로부터 1천600년이 지난 후 예루살렘의 한 율법사가 세상에 오신 예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분은 바로 이 모세의 당부를 그대로 인용해서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모세도 역시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 것이다.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삽입한 것으로 보이는 신명기의 말미에 그에 대한 평가가 나와 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 34:10).
그런 모세가 신명기의 중간 부분에 ‘다른 선지자’가 올 것을 예고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 18:17~18).
모세가 언급한 이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이 신학적 해석이다. ‘예표’로 선택되었던 여러 사람들을 모세가 소개했고 또 그 자신도 구원자의 예표가 되었으나 그는 자기가 아닌 다른 선지자가 오리라고 했다. 모세는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나 당대의 인물 중에서 특히 ‘여호수아’를 주목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자손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그에게 지휘를 맡겼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가 내일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출 17:9).
전쟁 경험도 없는 이스라엘 장정들을 지휘한 여호수아가 광야에서 가장 난폭한 아말렉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두자 모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 즉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여호와 이레’, 마라에서 만난 ‘여호와 라파’에 이어 그분의 능력에 대한 모세의 세 번째 감동이었다.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의 이름을 여호와에 연결시켜서 ‘여호수아’라고 불렀다.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민 13:16).
본래 이름 ‘호세아’는 ‘구원‘이라는 뜻이었는데 모세가 그를 ’여호수아’로 불러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의미가 되게 한 것이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자신의 비서로 삼았다. 후일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압 땅에서 모세의 임무를 끝내기로 결정하시자 성령 충만한 여호수아를 회중의 지도자로 삼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 27:18~20).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여호수아는 장차 성도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다. ‘예수’라는 그 이름 자체가 사실은 ‘여호수아’의 헬라식 표현이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그 후에도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많은 인물들이 있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직 점령하지 못한 원주민들 때문에 시련을 겪었다. 특히 미디안 때문에 고난당하던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므낫세 지파에 속하는 한 가문의 ‘기드온’을 부르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 6:16).
주저하는 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다. 성육신 이전의 말씀이신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자신의 역할을 맡게 된다. 기드온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 즉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제단을 쌓은 후에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미디안 군대 13만 5천명을 섬멸했다. 그러나 또 백년이 지나자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핍박에 시달렸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삿 13:1).

이번에는 또 ‘여호와의 사자’가 단 지파의 마노아에게 나타나 장차 태어날 아들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나실인으로 태어난 ‘삼손’은 가사 성문의 문설주와 문빗장을 어깨에 메고 헤브론 산으로 올라갈 만큼 장사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에게 비밀을 말하여 적들에게 잡혔고, 고통을 당하다가 다곤의 신전에 끌려가 그 기둥을 껴안고 쓰러져서 신전을 무너뜨리며 목숨을 잃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삿 16:30).
비록 블레셋 사람의 계략에 넘어갔다고는 하나, 사랑하는 자에게 진실을 알려준 일, 가사의 성문을 뜯어 어깨에 메고 헤브론으로 올라간 사건, 자신을 희생하여 우상의 신전을 허문 것 등은 역시 구원자 즉 그리스도의 예표적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로 남은 것은 또한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끈질긴 열망의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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