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의 이름을 부를 때에

하나님이 땅에서 흙을 취해 인간을 지으시고 그 첫 사람의 이름을 ‘아담’이라고 불렀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 이름의 뜻을 밝혀 놓았다.
“그를 아담이라 불렀는데 붉은 흙에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붉은 자’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1)

하나님이 첫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신학자 마르틴 부버(Buber, 1878~1965)는 그의 논문 ‘나와 너(Ich und Du)’에서천지 창조는 곧 ‘관계의 창조’였다고 단언했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부버, <나와 너>)

이 관계의 창조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관계로 파급, 확장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19).

너를 찾아서
하나님은 다시 아담의 중요한 ‘너’가 될 배필을 그의 갈빗대로 지으시고 그에게로 이끌어 오셨다. 그러나 아담은 그녀를 그저 ‘여자’라고 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창 2:23).

아담은 그녀가 자신의 뼈와 살로 만든 그의 일부이며 함께 살아야 할 아내로만 인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로 인해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에덴 동산을 나오게 되었을 때 아담은 비로소 그녀를 자신과 같기는 하나 독자적인한 인격체로 인식하게 되어 그녀의 이름을 지어 불렀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창 3:20).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알고, 존중하고, ‘나와 너’ 사이에 중요한‘관계’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온 이름들은 다 아름답다. 그 모든 이름이 사랑의 관계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아2:14).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에게만 상대방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창조하고, 아담이 그 이름을 불러 서로 관계를 맺은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
사람은 세상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이 곧 데스몬드 투투(Tutu)의 ‘우분투’ 신학이다. 응구니 족의 언어로 우분투라는 말은 아프리카적 세계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인간성은 당신의 인간성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삶은 여러 사람과 함께 묶여 있다는 생각이 곧 우분투이다.”(투투, <용서 없이 미래 없다>)

투투 주교의 우분투 신학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사람이 된다”는 아프리카 속담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창조하고, 모든 생물을 창조했을 때와 같이 그들의 모든 관계는 아름답다. 에덴을 떠나 갈피를 잃어버린 그 관계는 서로 이름을 불러줄 때 다시 연결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물상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꽃’)

김춘수는 이 시에서 다시 그 ‘관계의 파급’을 꿈꾼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가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미국의 조지 큐커 감독은 1964년 버나드 쇼의 유명한 희곡 ‘피그말리온’을 번안하여 ‘마이 페어 레디(My Fair Lady)’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언어학자 헨리 히긴스 교수는 친구인 피커링 대령과 함께 슬럼가를 지나다가 꽃을 파는 말괄량이 아가씨 일라이자 둘리틀을 보고 친구에게 저런 촌뜨기 여자도 언어 훈련을 시키면 고상한 숙녀로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천박한 욕설을 섞어가며 떠들어대는 일라이자를 보고 어림도 없다고 생각한 친구는 히긴스 교수가 그녀를 6개월 내에 요조숙녀로 바꾸어 놓겠다고 하자, 성공하면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내기에 응하라고 제의한다. 일라이자를 훈련시키기 시작한 히긴스 교수는 그녀의 촌스러운 말씨와 액센트를 교정시켜 우아한 숙녀로 만들었으나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한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고구려 평강왕(559~590) 때 사람 온달(溫達)은 성품이 착하나 용모가 기이하고 늘 걸식으로 모친을 봉양하므로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 하였다. 평강왕의 어린 공주가 울기를 잘하므로 왕은“네가 울기만 하니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겠다”며 놀리곤 했다. 공주가 자라 16세가 되어 부마감을 고르려 할 때 그녀가 아뢰었다.
“부왕께서 저를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시더니 이제 와서 지엄하신 말씀을 바꾸실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온달에게로 가겠습니다.”(<삼국사기> 열전 5)

공주는 왕궁을 나와 온달의 집에 이르러 노모의 만류를 무릅쓰고 그의 아내가 되었고, 그를 가르쳐 마침내 늠연한 무사가 되게 하였다. 그는 나라가 주최하는 사냥대회에 나가 출중한 성적을 올려 왕의 주목을 받았고, 요동에 침입한 후주 무제의 군대를 대파하여 전공을 세웠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온달을 사위로 맞아들이고 그를 대형(大兄, 장군)의 직에 올렸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잠 17:5).

관계의 발견
하나님이 물고기와 새들에게 복을 준 것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본능을 준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에게 준 복에도 역시 그 생존과 번식의 지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

물론 사람에게도 우선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임무에 필요한 복이 추가되었다.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부르게 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게 했다. 그것은 정복하고 다스리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에 참여할 모든 피조물과 생물을 가꾸고 보살피는 ‘창조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돕는 배필 즉 ‘에셀 케네그도’에서 ‘에셀’은 구원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즉 단순히 돕는 것뿐 아니라, 어떤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건져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적 관계’이다. 그래서 여자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즉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던 것이다.
“어떤 것이 괴로운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 모르는 저에게 ‘보물찾기’를 주었고 그 속에서 그녀를 발견했습니다.”(박재원, <보물찾기>)

박재원의 이 소설에서 두 주인공은 ‘바람의 여신’과 ‘라파엘’이라는 ID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보물찾기’에 나서고 있다. 처음에는 ‘허브 티’, ‘비단 잉어’등 신변의 작은 소재들을 떠올리다가 마침내 ‘관계’를 언급하기 시작한다.
“그와 저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모니터 밖의 현실에서 실제 인물인 오주환 실장과 여비서 주혜린은 고와 사생아라는 자신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부딪혀 간다.
“대화가 필요하군요.”

오주환 실장은 자신을 실장님이라고 부르는 혜린에게 부탁한다.
“실장님이 아닙니다.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주환은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찾았다고 깨닫는다. 그는 혜린에게 다짐한다.
“지진이 나도, 해일이 나도, 기상이변이 닥쳐도 제가 옆에 있어요. 이거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람의 여신’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어떤 것이 괴로운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 모르는 저에게 ‘보물찾기’를 주었고 그 속에서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를 고백한다.
“제일 믿기 힘든 것은 그녀의 아픔이 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아프면 제가 아프고, 그녀가 힘들어하면 제가 더 힘들었습니다.”그것이 바로 ‘관계’의 발견이고, 우분투의 시작이었다. 그것이 곧 창조주가 인류에게 최후까지 남겨 놓은 보물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바람의 여신’ 주혜린도‘라파엘’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보물찾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보물찾기는 그저 제가 좋아하는 것을 이리저리 늘어놓은 것뿐이죠. 그 안에는 별것이 아닌 것도 있고, 중요한 것도 있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것도 있고, 살아가기 나름인 것도 있어요.”

그러나 그 보물찾기에서 결국 그녀는 ‘희망’을 찾아낸다.
“과거의 전유물들은 보란 듯이 쭉 늘어서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여주는 보물들은 한구석에 먼지를 쓴 채 뒹굴고 있어요. 먼지를 털어내고 하나둘씩 늘어놓자 그 때 깨달았어요. 어쩌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희망’과 그 지침서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을 여태까지 잘 몰랐다는 것을요. 보물들이 제 인생의 돌덩이들을 치워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한다는 것은 그러네요. 마치 별자리 같아요. 제 발걸음을 인도해주는 별자리 말예요.”(박재원, <보물찾기> 좋아하는 것의 의미)

하나님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일러준 비밀처럼 그분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고,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렘 29:11). 사람이 생명과 빛의 말씀을 거부하고 에덴을 나올 때 사람의 눈에는 무서운 절망만 보였으나, 하나님은 이미 그 때부터 희망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 3:22~23).

하나님은 사람이 생명 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지 못하도록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보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은 사람이 영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계셨다. 그 하나님의 본심이 아들을 통해 전해졌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비밀이고 희망이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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