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보다 높은 곳에 계신 주님

문제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인간은 문제를 만나면 고통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와 고통만 커 보이고 높아 보입니다. 학창 시절 우리는 장애물 건너 뛰기나 높이 뛰기를 했습니다. 그 때 대상들이 얼마나 커 보이고 높아 보였던지요.
인생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이 그렇습니다. 문제와 고통에 집중할 때 판단력과 삶의 방향과 자신감과 행복감도 다 상실하고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문제나 고통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그러니까 세상보다, 세상의 문제보다 크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유다 히스기야 왕 때 당시 잔인하고 포악하기로 맹위를 떨쳤던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십팔만 오천 명의 대군사를 이끌고 유다를 쳐들어 왔습니다. 유다 민족에게 앗수르의 군사들, 문제는 얼마나 커 보였고 높아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더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이렇게 전합니다.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왕하 19:20). 기도는 역사를 일으켰고 제국의 대군사는 전멸하고 맙니다. “이 밤에 야훼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되었더라”(왕하 19:35).

이사야 33장은 이 역사적인 배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찬양합니다.“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사 33:2), “야훼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사 33:5). 모세도 ‘그 높아 보이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한
후 같은 찬양을 했습니다. “야훼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출 15:1).

“터널에서 어둠에 집중하지 말고 출구의 빛에 집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집니다. 문제와 고통에 집중하지 않고 그 너머 높은 곳에 계신 주님께 집중하고 구원의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기적의 아침을 맞습니다.†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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