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어떤 이름을 지어 주시겠습니까?

새해의 찬란한 태양이 온누리를 비치면서 떠올랐습니다. 이 태양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태양 아래에서 어떤 사람은 매일 매일을 승리와 기쁨, 축복으로 채워 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슬픔과 패배, 절망으로 얼룩지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주어진 날들에 올바른 이름을 붙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한 사람이나 사물의 성격과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창세기 2장 20절 말씀을 보면 아담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짐승에게 지혜롭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름을 지을 수 있는 능력, 즉 성격과 운명을 규정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한 인간의 운명을 변화시킬 때에는 반드시 그 이름부터 먼저 바꾸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99세가 될 때까지 아들이 없었는데 99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아브라함이란 히브리어로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의 아내 사래는 사라, 즉 ‘여주인’이라는 뜻의 새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대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많은 민족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운명의 변화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일을 행하신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성미가 급하고 거칠며 변덕이 심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의 이름은 ‘갈대’라는 뜻의 시몬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 즉 ‘반석’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교회의 기둥이 되었고 반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름 없이 다가오는 하루하루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라는 시간에 어떻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재수 없다”라고 하면 정말 재수 없는 날이 되고, “귀찮아 못 살겠네”라고 하면 실제로 온종일 귀찮은 일 때문에 못 살 지경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서 “즐거운 하루”라든지 “보람 있는 날”이라든지 “강건한 하루”라고 이름을 붙이면 그와 같은 일들이 그날 하루 동안 일어나
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해에도 이름을 붙여주면 새해의 성격과 운명이 결정되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제 전혀 새롭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새해를 하나님께로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아담에게 짐승을 보내시고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름 짓는 광경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금년에는 어떤 이름을 지어 주시겠습니까?†

조용기 목사(193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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