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명문가를 이루게 하소서(이영훈목사님 가문의 신앙 스토리)

주의 종을 잘 섬겨라(9회)

나는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기도의 어머니, 섬김의 본을 보이신 어머니셨다. 남편과 교회와 시부모를 극진히 섬겼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 보시다가 좋은 것을 보시면 먼저 목사님 댁에 갖다 드렸다. 예를 들면 시장에 장보러 가셨다가 좋은 고기가 나오면 먼저 한 근은 목사님께 드리고, 그 다음 한 근은 집으로 가져와 시부모를 섬겼다. 교회를 잘 섬기고 주의 종을 잘 섬기는 것이 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말씀해 오신 것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셨다.

섬김의 본을 보이신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보고 배웠다. 어머니는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이다.
어머니는 햅쌀이 나오면 먼저 품질이 가장 좋은 쌀 한 가마를 구입해 목사님 댁에 갖다드렸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쌀을 우리 가족들이 먹었다. 조용기 목사님댁은 우리 집에서 세 집 건너 아래에 있었다. 아주 가까운 이웃에 살았기 때문에 목사님 집을 자주 들르셨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나를 불러 앉혀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은 예수님 같은 분이시다. 그러므로 목사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나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순종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어머니의 이런 교육은 나의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주의 종을 향한 절대 순종을 어머니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하자.’

어머니는 화가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조종사다. 이탈리아 나폴리에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한 소년은 세계적인 가수가 될 꿈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어느 날 소년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꿈을 공개했다.
“나는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고 싶다.”
그 순간 친구들은 책상을 치며 폭소를 터뜨렸다. 음악선생님마저 냉소를 보였다.
“네 목소리는 마치 바람에 문풍지가 우는 것 같다. 소년아! 다른 길을 찾아라.”
소년은 절망했다. 그때 농장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소년에게 말했다.
“네 목소리는 개성이 강하다. 계속 노력하라.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성대를 가질 것이다.”

소년은 어머니의 격려에 힘을 얻어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테너의 대열에 당당히 올랐다. 이 소년의 이름은 엔리코 카루소다.
어머니는 화가다. 자녀는 어머니가 그린 한 폭의 그림이다. 폭군 네로의 어머니는 살인자였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어머니는 경건한 청교도였다.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왕성한 활동가였다. 어머니는 자녀의 인생을 좌우하는 조종사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비결


나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너무도 감사하다. 할아버지의 신앙교육도 어머니의 그것과 일맥상통했다. 할아버지는 가끔 나를 불러놓고 교육을 시켰다.
“영훈아! 내 말을 명심해서 잘 들어라. 하나님께 복을 받는 비결이 무엇인 줄 아느냐? 언제나 성수주일하고, 예배 잘 드리고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네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목사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안 된다.”
나의 머릿속에는 ‘순종’이라는 단어가 크고 또렷한 글씨로 각인되어 있었다.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주일날 연봇돈 100환 중 절반으로 친구와 함께 사탕을 사먹고, 남은 50환을 헌금했다가 크게 혼이 난 이후로 올바른 물질관을 갖게 된 것, 성수주일하는 것,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것, 주의 종 앞에서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 모두 할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다.
‘내가 50환을 헌금한 것을 할아버지가 어떻게 아셨을까?’
사실 이것이 내겐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당시 교회학교 학생 중 100환이라는 큰 돈을 헌금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마 항상 100환을 헌금하던 내가 갑자기 50환을 헌금하니 교회학교 선생님이 할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린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본다. 이런 작은 사건 하나하나가 내 삶의 철학을 정립시키는 귀한 계기가 되었다.

소년 시절의 은혜로운 부흥회


서대문 시절에는 부흥회가 참 많이 열렸다. 거의 매달 부흥회가 열렸다. 나는 거의 모든 부흥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한국의 저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는 대부분 그때 들었다. 부흥회는 보통 주중에 닷새 동안 열렸다. 저녁 집회는 오후 7시 30분에 열렸다. 그리고 보통 저녁 집회가 11시쯤 끝났다.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입
추의 여지없이 들어와 강대상 위까지 교인들이 빽빽하게 앉아 예배드렸다. 통행금지 시간이 철저하게 지켜지던 시절이었다. 미처 귀가하지 못한 교인들은 예배당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기도 했다.
나는 모든 집회를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매 집회마다 큰 은혜를 체험했다. 어린 학생이 왜 그리 집회에 열중했을까. 성령세례를 체험한 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부는 주일에 만화책을 보거나 놀이에 집중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주일은 개인의 유익과 쾌락을 꾀하지 말고 경건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서 무엇을 사먹지도 못했다. 그것이 어린 시절 조부에게 배운 올바른 성수주일의 모습이다.
“알곡신자가 되고 싶으냐? 그러려면 주일성수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거라.”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어린 나이에도 모든 부흥회에 참석해 큰 은혜를 받았다. 내 일생 중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던 때였다. 그때 드린 간절한 기도가 삶을 지탱해주는 견고한 밧줄이 되었다.†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