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명문가를 이루게 하소서(이영훈목사님 가문의 신앙 스토리)

신앙이 최고의 유산이다(7회)

성령세례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면 삶의 가치관이 바뀐다. 삶의 목적이 바뀐다. 삶의 재미가 바뀐다. 세상의 기쁨은 찰나적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한 것이다.

성령세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소년시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밭에 믿음의 씨앗이 떨어져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른들은 나비가 꽃밭에 날아드는 것을 보고 나비가 꿀을 찾는
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린이는 나비가 엄마를 찾아간다고 말한다. 먹구름 사이에서 태양이 빛날 때, 어린이는 하늘이 예쁘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어른들은 운동하기 좋은 날씨라고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어린이의 원초적 신앙고백은 어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이것이 바로 일찍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하는 이유다.

예수 믿는 재미
미국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다. 8남매를 두신 어느 권사님의 얼굴에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원인은 하나였다. 8남매가 한결같이 망나니였다. 신앙생활과는 아예 담을 쌓고 세속의 탁류에 젖어 살았다. 권사님은 그것이 늘 가슴 아팠다. 하루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권사님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목사님! 참 대단하십니다. 젊은 분이 세상 재미도 모르고 복음에 붙잡혀사시네요.”
나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예수 믿는 재미에 푹 빠져 삽니다. 그것은 세상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일찍 예수를 믿게 되어 더욱 감사합니다.”

나는 4대째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장로교의 전통에 따라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조부 이원근 장로님은 평양 서문밖교회를 섬기신 분이다. 새문안교회를 개척한 강신명 목사님이 바로 이 교회 출신이다. 조부가 서문밖교회를 섬기실 때 강 목사님은 교육 전도사였다. 서울 강변교회를 개척해 사역한 후 은퇴한 김명혁 목사님도 이 교회 출신이다. 그리고 서문밖교회 출신들이 월남해 세운 교회가 현재 손달익 목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서문교회다.

50환의 교육
나는 할아버지에게 딱 한번 혼이 난 적이 있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으로 기억한다. 교회 주일 헌금은 항상 100환을 받았다. 당시 100환은 참 큰 돈이었다. 그런데 한번은 친구가 유혹을 해왔다.

“친구야. 50환은 사탕을 사먹고 50환은 헌금하자. 우리가 그렇게 해도 아무도 몰라.”

처음에는 절대로 안 된다고 손을 저었다. 그러나 친구의 계속된 꼬임과 달콤한 사탕 맛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죄는 솜이불처럼 부드럽고, 솜사탕처럼 감미롭게 영혼을 녹인다.

영국의 소설가요 노벨 문학생 수상자인 커플링의 ‘죄’라는 시가 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린다.
“누구신가요?”
“나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여인의 연약한 음성이다.
“지금 내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소.”
“사랑을 그리워하는 가녀린 소녀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제 이름은 ‘죄’입니다.”
“아, 그렇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그 순간 내 마음의 방은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찼다.
성경적 물질관을 갖다
나는 찜찜한 마음으로 50환을 헌금으로 바쳤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속에 기쁨과 희락과 평강이 전혀 없었다. 후회를 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헌금을 제대로 잘 했느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조부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조부의 눈빛을 속일 수는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100환을 모두 헌금했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조부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처럼 화를 내신 적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그 헌금이 무슨 돈인지 아느
냐?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다.
그것을 네가 떼어 먹었느냐. 교회 헌금을 네가 사용했느냐?”
거의 30분 동안 훈계가 이어졌다. 나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모습으로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때 이후로 평생 동안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는 일은 없었다.

그 사건을 통해 확고한 물질관이 정립되었다. 감사헌금이든, 절기 헌금이든, 십일조든 하나님께 하나라도 더 드리면 드렸지 하나님의 것을 탐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품었다.

나는 신앙생활의 기본을 가정에서 배웠다. 어릴 때부터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다.
그것은 우리 가정의 전통이었다. 토요일이면 캐나다 큰빛교회 장로이신 작은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우리 형제들을 모두 모아놓고 성경 퀴즈대회를 열었다. 1등을 한 아이에게는 제법 큰 상금을 주셨다. 나는 그 상금을 독차지할 요량으로 일주일 내내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아마 내가 형제들 중에서 가장 많은 상금을 받았으리라.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벌써 성경의 중요한 스토리를 거의 꿰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이미 하나님을 향한 강력한 신앙고백을 마음에 품고, 신앙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것이 참으로 큰 축복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신앙이 최고의 유산임을 깨달았다.†

이영훈 담임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