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명문가를 이루게 하소서(이영훈목사님 가문의 신앙 스토리)

성령세례와 방언을 받으세요(6회)

교회를 옮긴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순복음교회는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 일부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순복음교회의 열정은 모두가 인정했다. 예를 들면, 순복음 교인들은 모이면 간절히 통성기도를 하고, 흩어지면 열심히 전도를 하는 열성파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느 교회나 예배 중에 드럼과 다른 악기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예배 중에 북을 치고, 박수를 치는 유일한 교회였다.

그때 한국교회 예배 분위기는 ‘엄숙’과 ‘경건’ 그 자체였다. 예배 중에는 함께 찬송 부르는 것 외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엄숙했다. 보수적 장로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충현교회에서 순복음교회로 신앙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신앙의 뿌리를 흔드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견지해오던 신앙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혁명적 변화였다.

북 치고 손뼉 치는 교회
우리 가족이 모두 순복음교회에 정착한 것은 교인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더구나 신앙의 명문 가문으로 부러움을 사던 가정이 아닌가. 어느 날,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이 조용히 부모님을 불렀다.

“이원근 장로님(조부)께서 다리가 불편하셔서 교회를 가까운 곳으로 옮기기로 하셨다면서요. 집에서 가까운 교회로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순복음교회입니까?”

김창인 목사님은 매우 강력한 어조로 순복음교회로 교회를 옮기는 것을 반대했다. 왜 순복음교회가 이런 오해를 받았을까. 당시 박태선 전도관이 박수를 치며 찬송을 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이 같은 예배행위에 대해 거부감
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중에는 김창인 목사님도 은사집회를 열었고, 충현교회도 예배를 드릴 때 박수도 치고 통성기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1964년 당시에는 순복음식의 열정적인 예배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새로운 교회를 선택한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큰 결단이었다. 할아버지의 도로 1964년 4월 우리 가족은 순복음교회에 등록했다. 나는 새로운 교회 분위기가 많이 어색했다. 충현교회에서 조용한 신앙생활을 해오던 나에게 순
복음교회 스타일은 적응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예배 때마다 ‘북 소리’와 ‘박수소리’가 혼을 빼놓았고, 통성기도 시간에는 구경꾼이 되어 두리번거리며 이상한 소리(방언)를 하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조용기 목사님의 특유의 속사포 같은 빠른 말투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용기 목사님께서는 매 예배시간마다 성령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세례와 방언을 받아야 합니다.”

심지어 교회학교 교사들도 매 예배시간, 공과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모두가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했다. 성령이 뭔지도 모르는 나로서는 가슴이 답답했다. 이것 참 딱한 노릇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순복음교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성령을 받아야 하겠구나.’
나는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제게도 성령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방언도 함께 주시옵소서!”

그때 내 나이 열 살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소년의 입에서 간절한 기도가 쏟아져 나왔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는 기도였다. 하나님은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 영혼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다. 간절히 기도한지 정확히 1년 10개월 후 성령을 사모하는 그 마음속에 바람 같고, 불 같고, 생수 같은 성령을 내려주셨다.

오랫동안 전통적인 장로교 신앙에 익숙한 내게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아, 그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독수리가 알에서 깨어나 창공으로 비상(飛上)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순복음교회에 와서 ‘성령세례’나 ‘방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순복음교회에 오기 전까지 나는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 교회 열두 제자들처럼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했다. 그런 내게 성령이 임한 것이다. 내 입에서 방언이 터진 것이다.


성령 세례를 받다
내가 성령을 받은 것은 1966년 2월 조용기 목사님의 부흥성회를 통해서였다.
부흥성회는 닷새 동안 열렸다. 부흥회에 첫날부터 참석했는데 처음 3일간에는 특별한 변화의 징조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흘째 되던 날, 갑자기 가슴이 불처럼 뜨거워졌다. 그리고 통성기도 하는 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방언이 터져 나왔다. 마음속에서 계속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십자가 고난이 떠오르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날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내 죄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기도할 때마다 자꾸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시던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라 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성령체험 후 5년 동안 기도할 때마다 십자가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옛날에는 아무리 힘써 기도해도 5분을 못 기도하던 내가 성령체험 후 기도를 시작하면 한 시간이 5분처럼 지나갔다. 이 성령세례 체험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청년과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세상의 쾌락을 좇아 살지 않았다. 술집이나 클럽에 가 본 적이 없다. ‘예수의 핏 값으로 구원받은 나는 세상 사람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한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인생의 목적이 달라야 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는 확연하게 달라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든든히 붙잡아주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세상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 헛되고 헛된 것을 위해 많은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지 않게 한다. 이와 같은 삶을 살게된 것은 일찍 성령세례를 체험한 덕분이다. 우리의 자녀, 교회의 어린이들에게 일찍부터 말씀의 충만과 성령체험을 하게 해주자.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내 삶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귀한 교훈이다.†

이영훈 담임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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