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하늘의 물로 오신 예수

예수님의 생애의 첫 날 밤에는 베들레헴의 양들이 물을 마시는 물통에 누우셨고, 그의 마지막 날에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물 저장고에 머무셨다. 예수님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 하늘로부터 오신 생명의 물이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보여주시고 침묵 속에서 소리 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수 년 전, 예루살렘에 잠시 머물렀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홀로 갇혀 계셨던 지하 감옥에 방문하게 되었다. 암반을 파서 만들었던 이 감옥은 2천 년이 지났지만 고스란히 그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 지하 감옥 위에는 ‘닭이 울다’라는 뜻의 갈리칸투 기념교회(베드로통곡교회)가 세워져 있고,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열광적인 순례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머무셨던 공간이라며 벽을 만지며 우는 사람, 주문 같은 기도를 올려드리는 사람 등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양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감옥이기 때문에 감옥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다. 한쪽에 순례객들을 위해 만들어 둔 나선형 계단으로 떠밀려 내려갔다가 잠시 후 줄지어 올라가야 한다.
이 감옥의 구조와 용도는 그리스나 로마 시대를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문을 열고 닫는 지하 감옥들과는 다르다. 이곳은 원래 감옥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물 저장고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예루살렘의 부드러운 암반 위에 세워진 저택들은 지반의 암석을 파내어 물 저장고를 만들었다. 입구는 사람 하나가 겨우 오갈 수 있는 정도의 동그란 구멍이지만 그 밑으로는 온 식구들이 비가 오지 않는 건기 내내 필요한 물을 수용할 만한 저장 공간을 파두는 것이다. 건기와 우기의 계절의 차이가 분명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물을 저장하는 기술이 필수적이었다. 특히 강이 없는 곳에 세워진 도성, 예루살렘에게 있어서 물은 곧 생명이었다.

인류의 고대 문명은 강과 함께 세워져 왔다. 나일 강 줄기를 따라 일어난 이집트 문명이나 유프라테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강은 생명의 산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루살렘 성 주변에는 강이 보이질 않는다. 성 밖에 있는 기혼 샘을 연결해서 성내에서 물을 마실 수 있게 해둔 실로암 연못이 있을 뿐이었다. 예루살렘은 언제나 하늘의 물을 기다리는 목마른 도성이었다.
암반을 파내어 만든 물 저장고는 천정의 작은 구멍 외에는 사방이 막혀 있어 물이 없고 비어 있을 때는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의 용도로 사용되곤 했다. 천정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밧줄을 타고 물 저장고 안으로 떨어지고 나면 그 감옥에서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천정에서 다시 밧줄이 내려올 때까지 죄수는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돌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 2천년 전, 예수님은 죄 없는 죄수가 되어 물 없는 물 저장고에 갇혀 계셨던 것이다.

주님의 마지막 날 밤

해질녘 도착한 갈리칸투 교회 입구에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후회 막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베드로의 조각상이 서 있다. 예수님과 함께 감옥으로 향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향으로 질주했던 그의 부끄러운 이기심을 마주하며 나는 동행한 친구와 함께 감옥으로 향했다.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도착해서 그런지 감옥에는 아무도 없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 날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신 그 공간을 고스란히 차지하다니 엄청난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물 저장고의 차디찬 암반에 기대어 앉아 예수님의 마음을 그려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지고 암흑이 찾아왔다. 우리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순례객들이 이미 철수했기 때문에 관리하시는 수녀님이 지하에 아무도 없다고 여기시고 불을 꺼버리신 모양이었다. 얼른 소리를 내고 달려 나갈 것이냐, 아니면 깜깜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감옥에 더 머물러 볼 것이냐 하는 순간적인 기로였다. 친구와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더 머물기로 했다. 예수님이 머무신 감옥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테니…….
불이 다 꺼진 지하 감옥의 암흑과 침묵은 2천 년 전 주님이 홀로 계셨던 그 시공간으로 나를 인도해주었다. 지하의 차디찬 돌 벽의 한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어둠은 익숙해졌다.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는 예루살렘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며칠 사이에 이 어둡고 습한 지하 감옥에 갇혀 버린 모습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아버지 나를 왜 이런 곳에 보내셨습니까’ 하는 원망 섞인 한탄을 드리셨을지, 아니면 바깥에 우는 닭 소리를 들으시며 베드로를 생각하셨을지, 이런 저런 산만한 생각들이 잠잠해질 무렵 나는 주님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목마른 예루살렘의 텅 빈 물 저장고에서 인생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계신 주님이셨다. 어둠과 침묵만이 이어지는 듯 했으나 주님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고 계셨다. 마지막 날 밤, 주님은 온전히 그가 계셔야 할 곳에 계셨다.

물이 없는 마른 물 저장고는 예루살렘에게는 죽음과 같은 의미였다. 물이 없으면 이 도성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텅 비어버린 마른 물 저장고는 어쩌면 인류가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비추어주고 있는 공간이 아닌지. 죄수들의 감옥이며 죽음을 기다리는 인생의 무덤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 하늘의 생수이신 예수님이 직접 내려오신 것이다. 그는 하늘로부터 오신 물, 목마른 예루살렘에 구원의 물, 텅 비어버린 물 저장고를 채우시는 물이었다. 텅 비어 있던 물 저장고를 가득 채우고 넘쳐 흘러 다시는 마르지 않을 것을 알리시는 말씀이었다.

하늘의 생수

목마름에서 충만함으로 바꾸시는 예수님의 임재가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더 이상 메마르고 어두운 감옥이 아니라 생명을 품고 있는 산실로 변화되었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강이 없는 목마른 도시라는 수치스러운 이름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강이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흘러가는 생명의 산실로 불리울 것이다. 목마름으로 고통당하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사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 그분을 유일한 생명의 물로 여겨 마시는 자는 죽어도 살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마지막까지 감옥에서조차 침묵 속에 말씀하고 계셨다.
예수님의 생애의 첫 날 밤에는 베들레헴의 양들이 물을 마시는 물통에 누우셨고, 그의 마지막 날에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물 저장고에 머무셨다. 예수님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 하늘로부터 오신 생명의 물이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보여주시고 침묵 속에서 소리 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이 그의 생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장소로 아버지께서 인도하신 곳은 마르고 텅 빈 물 저장고였다. 메마르고 공허한 내 삶이 예수님을 마주할 수 있는바로 그 저장고라면, 감옥처럼 여겨지는 그 어느 곳이 주님이 가시기로 결정하신 곳이라면 그 자리의 메마름과 어두움을 피하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서 눈을 떴다.
깜깜한 계단을 천천히 올라 교회당을 걸어 나왔다. 입구에서 다시 만난 베드로의 얼굴은 우리에게 물을 충분히 마셨느냐고 묻는 듯 했다. 감옥에서 익숙해진 어둠 덕분인지 예루살렘의 밤 하늘의 별빛은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제 영(靈)의 집이 황폐해졌으니

|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


하나님! 저에게 당신을 경외함으로 믿을 수 있는 광명과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생명과 당신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소서.
그리고 언제나 당신의 성스러운 사랑 안에서 살 수 있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께서 제 마음의 기쁨이 되어 주시고 제 마음을
주께서 온전히 소유하여 주시옵시고, 당신 안에서 살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제 영혼의 집은 당신을 위해서는 너무나 조그마합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그것을 넓히시고 그 안에 거해 주소서.

제 영혼의 집이 황폐해졌으니 그것을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는 당신의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을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아니고 누구의 힘을 빌릴 수가 있겠습니까?
제 안에 숨어 있는 과오를 용서하여 주시고,
그 숨어 있는 죄가 힘을 발휘할 수 없도록 멀리 사라지게 하여 주소서!
오직 당신을 향하여 간구합니다. 아멘

진희경 (목사)

어린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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