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순종하면 인생 최고의 축복을 받는다”
큐티는 삶이다
그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소위 엘리트였던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 고난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고 평생 몸뻬바지 입고 교회 화장실을 청소하는, 교만의 ‘교’자도 모르는 삶을 살았다. 유별나게(?) 예수 믿은 어머니 덕분에 자녀들은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어린 김양재에게는 무조건 내편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것이 큰 고난이었다. 그 다음 고난은 지독한 시집살이였다.
“의사 남편을 만났다고 다들 복 받은 거라고 입을 모았는데 결혼하고 13년간 문 밖 출입도 어려울 정도로 용광로 같은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내면의 죄를 직면해야 하는데 쌓아놓은게 많으니 무너뜨릴 것도 많았지요. 제가 원래 인내와 교양이 9단이었잖아요.”
죽고 싶고 이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결혼 5년 만에, 그러니까 김 목사의 나이 서른에 에스겔 1장 1~3절의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났다.
종종 어려움에 처하면 기도원도 가고, 기도도 받아봤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니 일시적이었다. 말씀묵상의 중요성을 깨닫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남편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내가 구원 받은 거 모든 사람이 알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말씀 묵상한 것을 가지고 집에서 한두 명 모여 모임을 갖고, 전화 오면 전도하고, 시장에 가도 전도하고, 어쩌다 미장원에 가면 거기서도 전도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말씀이 좋아 그러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아침에 남편이 하나님 곁으로 갔다. 황망하여 자칫 정신 줄을 놓을 수 있는 큰 사건이었지만 그날 묵상한 본문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마침 묵상한 본문이 에스겔 18장이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구원을 확인해주신 겁니다. 그 말씀으로 저는 힘을 냈습니다. 그날 큐티 노트에 ‘남편의 구원! 할렐루야!’를 적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생활 13년 만에 남편이 떠나면서 사역의 길을 걷게 됐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 말씀을 펼쳤는데 빛이 임하니 말씀을 통해 ‘죄인’임을 보게 됐고 그런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갔다. 1990년대 초반부터 평신도로서 본격적인 큐티 사역에 뛰어들었다. 하나님은 10년 만에 1천명이 넘는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을 붙여주셨다. 그래서 큐티선교회도 조직됐다.
큐티 사역을 하면서도 목회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원치 않는 길로 띠 띠우고 간다고, 나이 오십에 부르심을 깨닫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후 2003년 6월, 서울 휘문고 식당을 빌려 우리들교회가 정식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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