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을 하나님께 드리세요”

9.11과 밀레니엄 세대

터키 수상을 만나 현안을 논의 하는 모습.

그는 매년 9월 11일이면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며 기도한다. 그에게 9.11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9월이 돌아오는데요. 저는 9.11 사건을 뒤돌아보면서 밀레니엄 세대를 생각해요. 2000년대 초반의 이 사건을 겪은 세대들이 이제 세계와 미국 주류사회로 진출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과거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며, 어떤 동기와 원동력으로 삼아 세계를 변화시킬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 밀레니엄 세대들을 굉장히 유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희돈 장로는 믿음의 가문에서 자라났다. 부모님 모두 일본에서 법대를 나온 분들로 친할머니로부터 신앙을 이어받았다. 그의 외할아버지도 함경남도에서 교육감을 역임하며 처음 예수를 받아들였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저더러 눈이 침침하시다며 성경을 읽어달라고 하셨어요. 몇 장 읽으면 제게 용돈을 주셨죠. 나중에 돌이켜보니 제게 성경을 읽게 하시려고 일부러 그러셨던 같아요. 그렇게 초등학교 때 성경을 완독했습니다.”

그의 삶은 예수님만 바라보고 물위를 걸었던 베드로를 연상케 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맨 땅에 헤딩하기 같은 표현처럼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유학을 처음 떠날 때도 편도 티켓으로 돌아올 기약도 없이 떠났다.
“부모님이 왕복티켓이 아닌 편도티켓을 끊어주셨어요. 돌아오지 말라는 얘기인 줄 알았죠. 그리고 봉투를 하나 주셨어요. 봉투가 너무 얇아서 수표나 통장 비밀번호가 들어있는 줄 알았는데 편지만 한 장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돈을 잃어버린 줄 알고 한참을 비행기 좌석을 뒤졌어요. 내용은 ‘네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리라’ 이 말만 적혀 있었어요. 그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 그 말씀은 제 평생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가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의 이야기도 믿음의 모험이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지도 교수를 구했던 일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서 논문을 완성해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박사논문 심사 일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지도교수로부터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미국식 영어로 된 논문은 심사통과가 안 된다며 6백 페이지가 넘는 논문을 다시 써오라고 했다. 수년간 고생하며 쓴 논문의 표현을 일주일 안에 모두 바꿀 시간도, 돈도, 여력도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

“도서관에 갔는데 30여명의 대학원생들이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제가 책상에 올라가서 외쳤어요. ‘제 박사논문의 언어표현이 좋지 못해서 통과가 어려운 상황인데 여러분들이 세 장씩만 표현을 고쳐주면 저도 좋고 여러분도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은데 같이 하면 어떨까요?’라고 외쳤어요. 그랬더니 저쪽에서 누가 박수를 치는 거예요. 그래서 논문을 복사에서 한 사람당 몇 장씩 나눠주니 제 논문을 유럽식의 수준 높은 표현으로 바꿔주었어요. 이틀 만에 논문을 새로 써서 갔더니 지도 교수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죠.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그 논문의 주제는 무역을 통해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취지였는데 제가 의미한 바는 무역은 곧 선교이고 선교가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내용을 경제학 관점으로 쓴 논문이었어요. 그 내용이 나중에 세계무역센터협회와 무역기구들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이 됐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다시 취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교수가 되어 인생의 황금기라고 여길 때 그의 가족은 멕시코 오지 마을의 인디안 선교를 위해 교수직을 버리고 떠났다.
“아내가 어느 날 저에게 말했어요. ‘인생의 가장 좋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형제님이 예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아요.’ 저는 기억에 없는 말이었는데 그랬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요. 결국 다 버리고 떠났지요. 벼룩이 개미떼처럼 달려드는 동네였어요.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지만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시간들이었지요. 하나님은 보상을 해주셨어요. 오지에 있을 때 뉴욕에서 저를 찾는 팩스가 빗발쳤어요. 제 몸값은 날로 상승했고요. 하나님께서 나가라는 사인을 주셔서 1년 동안의 시간을 뒤로하고 세계무역센터협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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