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 삶을 바꾼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가? 네 입의 말을 바꾸라!

“저는 금수저일까요? 아니면 흙수저일까요?”
요즘 TV에 출연하거나 강연현장에 가면 청중에게 맨 먼저 묻는 나의 질문이다. 여러 가지 대답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금수저요”, “은수저요”, “다이아몬드 수저요…”

공영방송 메인 뉴스 앵커로 12년, 영국으로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교수로, 공공기관 기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소개를 하고 난 다음이니, 그런 대답이 나올 듯도 하다. 그러나 답은 반전이다.

“정답은 ‘흙 묻은 금수저’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대학입학시험은 1차에 떨어지고 후기 대학에 들어가 열등감에 싸여 대학생활을 했고, 교사시험, 기업입사시험, 모두 떨어졌습니다. 방송국도 세 번째에 가서야 비로소 합격했고, 정치하는 남편 뒷바라지로 갖은 고난과 시련을 다 겪어야 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해 말한다.
“결코 유복하게 비단길만을 걸어오지 않은 제 삶이었습니다. 간혹 흙을 묻히며 살았던 나날도 있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금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모두 ‘금수저’로 태어납니다.”

내가 이렇게 굳이 ‘흙 묻은 금수저’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은 내 스스로에게 주지시키고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패와 열등감, 시련과 고난의 흙 묻었던 삶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고귀하게 태어난 ‘하나님의 금수저 자녀’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요즘 대한민국 사람들은 ‘흙수저’로 태어난 서러움을 안고 ‘헬조선’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있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이런 말은 자기 스스로 비하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살펴보라
사람은 말하는 대로 산다. 감사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와 희망이 있다. 그러나 우울하고 억울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정말 그럴까? 왜 하필 말하기인가? 말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태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버튼이기 때문이다. 삶이 꼬이고 관계가 틀어지고, 날마다 짜증나고 되는 게 없다면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떤지 살펴보는 일이다.
그 이유는 첫째, 내가 한 말은 내가 가장 먼저 듣기 때문이다. 내가 하루 종일 쏟아낸 말을 생각해 보자. “더워 죽겠네, 아… 짜증 나, 교통지옥, 맛도 없는 게 왜 이렇게 비싸? 그걸 말이라고 하냐? 또 그놈의 잔소리. 당장 회사를 때려 치고 말아야지…”

주변 환경에 대한 불만, 불평,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거친 말, 비아냥거림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부정적인 말들이 외부의 상황과 상대방을 향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비난의 말은 내 귀에 제일 먼저 들어와 내게 영향을 끼친다. 마치 독처럼 온 몸을 돌아 퍼져나간다. 같은 이치로, 좋은 말도 내 입 밖에 나오면 내가 가장 먼저 듣는다. 자녀를 칭찬하고, 친구를 격려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감사의 말을 하니,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와 나를 기쁘고 건강하게 한다. 격려하는 말, 긍정적인 말을 하라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당장 내 입에서 나오는 말하기를 바꾸어 보라.


말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말은 삶과 존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말은 배의 작은 키(약 3:4)와 같고 마른 숲을 다 태워버릴 수 있는 작은 불씨(약 3:5)와 같다고 한다. 훌륭한 선장은 인생이란 배의 키를 잘 잡고 운행한다.
때로 암초나 폭풍을 만나기도 하지만, 지혜롭게 키를 움직여 목적지에 안착 하게한다. 혀를 잘 사용하면 인생의 바다를 순항하여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암초에 부딪쳐 좌초하고 만다. 말에는 권세가 있다. 죽고 사는 것이 바로 혀의 힘에 달렸고(잠 18:21), 선한 말이야말로 꿀송이(잠 16:24) 같고 생명 나무
(잠 15:4)이며, 은쟁반에 놓인 금사과(잠 25:11)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한 사람의 말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나의 삶이 증명한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아나운서가 되셨어요?” 나는 진명여고 다닐 때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로 아나운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국어 수업시간, 나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하신 이정숙 선생님은 여러 친구들 앞에서 칭찬해 주셨고, 아나운서가 되어 보기를 권하셨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정말 아나운서가 되었고, 그 한마디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빛으로 인도하는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잘못 사용된 말은 너무나 위험한 힘도 가지고 있다. 어느 중학생이 폭식증에 걸려 상담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아이의 엄마는 아빠와 싸우면서 “너만 아니었으면 벌써 네 아빠와 안 살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예민한 사춘기 소녀는 가정의 불행이 모두 자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자신은 그 집안의 축복의 아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저주했다. 그 증오를 끔찍하게 많이 먹고 토해내는 것으로 자신을 학대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이 더욱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이다. 노예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풀려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 해방의 감격은 온데 간 데 없고, 온갖 불평과 불만으로 투덜거렸다.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비난하며 믿음 없는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었다.
“목말라 미치겠다. 배고파 죽겠다. 차라리 노예로 살 때가 더 좋았다. 그 때는 고기도 먹었지 않나. 모세 선생, 당신이 우리를 광야에서 죽이려고 여기로 데리고 나왔습니까? 우리는 가나안에 못 갑니다. 힘 센 가나안 거인들 앞에 우린 메뚜기예요(출 14~17장, 민 11~14장).”

참고 참던 여호와 하나님은 불같이 분노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너무나 무서운 말씀이다. 광야에서 배고프고 힘들어 죽겠다고 제 입에 원망만 가득담은 메뚜기 같은 백성들은 그냥 거기서 살다 죽어라 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계셔서 우리 말을 들으시고 그 말대로 행하시고 계시지 않은가.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하는 수험생 자녀를 보면 부모는 속이 터진다. 참다못해 “너 그따위로 하다가는 대학 못 가!” 하고 악다구니를 할 수도 있다. 그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 집사, 네 말대로 네 아들 대학 보내지 말까?” 하실까 두렵다. “아휴,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 애는 좋은 말해선 안 들어요.”
말이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걸 용납하지 않으신다. “힘들지? 열심히 해보자. 네가 맘껏 하고 싶다던 일, 대학 공부해야 이루는 것 아니겠니?” 하고 참을성 있게 몇 번이고 곱게 말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우린 못하는 소리가 없다. “내가 너 땜에 못 살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안 돼!”, “만일 그렇게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참으로 끔찍한 말들이다.

차차차
그러면 어떻게 말하면 되는 것일까? 아주 쉽다. ‘차차차’ 해보는 것이다. ‘차차차’라니 마치 라틴 댄스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은 Challenge, Chance, Change의 앞부분 글자 ChaChaCha(차차차)를 말하는 것이다. 즉, 도전하면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로 말미암아 삶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말하기에서도 ‘차차차’를 실천하면 인생
이 놀랍게 바뀌게 된다.
일단 도전(Challenge)해 보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따뜻한 말, 축복의 말, 웃는 얼굴로 하는 말, 칭찬의 말, 감사, 사과, 용서의 말을 해보자. 남과 비교하고, 자기 비하하고, 남을 원망하고, 비판하고, 상처 주는 말은 이제 절대 내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말은 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로 우리 삶을 채우면 된다는 얘기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말, 즉 불평, 불만, 비난, 비판, 부정적인 말, 자기 비하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로 우리 삶을 채우는 것이다. 바로 감사하는 말, 칭찬하는 말, 축복의 말, 그리고 기도와 찬양이 내 입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서는 ‘고마워Yo(요)’라는 감사운동을 펼치고 있다. 어려서부터 우리 삶에 감사한 것을 발견하고 글로 써서 입으로 말하는 것을 생활화 하자는 캠페인이다. 벌써 많은 학교와 단체, 회사에서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백만 인이 이렇게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실천하는 날이 오면 우린 ‘헬조선’이 아닌 ‘천국 같은 나라’에서 날마다 기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실히 믿는다.

이렇게 도전을 해 보면 원하는 것을 얻을 기회(Chance)가 생긴다. 나의 말이 누구를 위로할 수 있고, 용기를 주는 씨앗의 말을 할 수도 있다. 먼저 나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게 되어 그 내용을 남과 나눌 수도 있게 된다. 깊은 성찰을 통한 말할 거리가 생기니 말하기에 자신이 생기고, 그로 말미암아 더욱 풍요로운 삶이 내 앞에 펼쳐지게 된다. 질긴 과거에 매여 헤어나질 못하거나, 오늘에 연연해 살거나 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비전과 가치를 나누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도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그 마음이 읽어진다. 비로소 공감이 되고,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변화(Change)된 나의 말하기와 태도를 통해 상대방도 변하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달라지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 이제 우리 삶은 비루했던 어제와 다른 놀라운 미래가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차차차!
왜 내가 이렇게 말하기에 집착하고 그 중요성을 전파하는데 전념하는가 하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나의 인생사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후반전을 계획하면서 나의 ‘인생사명’을 발견하고 이렇게 사명서를 썼다.

“성경을 바탕으로 한 말하기를 연구하여, 강연을 하고 책을 쓰고, 방송을 하여,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돕겠다.”

성경에 언급된 말하기를 연구하기 위해 연두색 형광펜을 꺼내 들고 먼저 잠언을 펼쳤다. ‘말, 혀, 듣기, 말하기’ 등과 연결되는 구절을 모두 표시했다. 성경책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말하기와 관련해 이렇게 많은 말씀이 있는 줄 상상도 못했다.

사명서에 쓴 대로, 그 믿음대로, 그 이후 말의 중요성을 알리는 강연을 하고 책도 쓰고 방송에 나가 이 내용을 전파하고 있다.
여전히 ‘무엇을 말할 것인가?’는 내게 큰 숙제이다. 그러나 말하기가 사명이라면 말할 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 큰 위안이 된다. 그리고 쉬지않고 이렇게 기도한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 알게(사 50:4) 하여 주시옵소서!”†

신은경 (이사장)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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