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기도원’에서 드린 감격의 예배(정두언 집사/전 19대 국회의원)

끔찍한 죄인

구치소에 있다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시간만큼은 부자다. 정신없이 바삐 살다가 그곳에 들어오면 신체의 자유를 포함해 모든 걸 다 빼앗기지만, 자신만의 시간은 보다 풍부해진다. 그리고 그 시간은 주로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는 데 쓰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곳은? 국립 중앙도서관? 아니다. 구치소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평소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 게 늘 불만이었다. 다행히(?) 구치소에서 그동안 못 본 책들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러나 생각할 시간이 많은 건 내게 무척 고통이었다. 내가 왜 이런 날벼락을 맞았나 하는 회한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이 많다 보니 과거의 이런 저런 기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데, 대부분이 다 과거에 끔찍이 잘못한 일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쁜 놈이었나 싶을 정도로 별의별 일들이 다 떠오르는데, 내가 여기서 이러고 벌을 받아도 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기억들은 내게 지난날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많은 잘못을 기억해 내려 애썼고, 기억나지 않은 수많은 잘못들은 성령께서 대신 회개해달라고 기도했다.

물론 나 자신이 수감 생활 중간에 두어 차례 무너진 적도 있었다. 2심 선고가 난 후, 그리고 만기 출소를 두 달여 앞둔 추석 연휴 때였다. 2심 선고를 받기 위해 법정에 나가던 날, 교도관들을 포함하여 구치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불 복귀를 예상했고 기대했다. 즉 무죄가 유력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집행유예 이상일 수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나는 겨우 2개월이 깎인 10개월 징역을 선고 받고, 어깨가 축 늘어진 채 구치소 독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내 방이 있는 7상 사동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였다. 비록 삭막한 감옥이지만 동료애는 살아 있었다. 그러고는 일주일 만에 소위 멘붕이 와버렸다. 나는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면서 숨을 제대로 쉬기도 힘든 상태로 갔다.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황급히 응급 처치를 받고 혼거방(여러 재소자가 쓰는 방)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세 명이 함께 지내며 간신히 정상을 되찾았다. 그러다 두 달 후 기나긴 추석 연휴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마음이 무너져 또다시 응급처치를 받아야 했다.

감옥에서 제일 힘든 시간 중의 하나가 명절 연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집 생각이 많이 날 때인데, 며칠을 연이어 면회나 운동도 못하고 좁은 방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두어 달 후면 이곳을 나간다는 말년 조급증까지 겹쳐서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두 차례의 심각한 무너짐은 고통의 심연 속에서도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일종의 단련과정이었다.

정두언 (서울홍성교회 안수집사/방송인/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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