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하모니 30년, 예술이 된 교회

작성일2019-07-21

1998년 경기도 김포 고촌감리교회 어린이들이 트럭에 올라 합주회를 하고 있다. 고촌교회 제공

30년 전 이곳은 한국방송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무대인 궁벽한 시골이었다. 노인들은 농사짓고 엄마 아빠는 공장 일 하느라 아이들은 방치되기 일쑤였다. 조금만 생활이 나아지면 당장 서울로 이사를 하곤 했다. 1988년 당시 전도사 신분으로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고촌감리교회에 처음 온 박정훈(61) 목사는 아코디언을 메고 거리에서 찬양을 하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1988년 당시 교회의 모습. 고촌교회 제공

비가 새는 판잣집 시골 교회에서 박 목사는 ‘김포에서도 된다’ ‘믿음과 실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자’는 두 가지 모토를 가지고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20여명 성도가 다니던 교회는 이제 주일이면 1000여명 장년과 500여명 교회학교 학생들이 예배를 드리며 이와 별도로 토요일엔 500명 넘는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는 학교로 커졌다. 성도들은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 꿈의 중심에 바로 오케스트라가 있다.

현재의 교회 전경. 고촌아트홀을 겸하고 있다. 고촌교회 제공

지난 13일 지금은 주변이 아파트 숲으로 변한 고촌교회를 찾았다. 직육면체 모양의 모던한 교회 건물 외곽엔 ‘높은음자리표’와 유사한 교회 로고에 영문으로 ‘고촌아트홀(Gochon Art Hall)’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1층 입구에 들어서면 통유리 채광에 눈이 부시고 왼쪽엔 십자가 갤러리, 오른쪽엔 대형 카페가 있다. 소리가 큰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등 관악기는 지하 1~2층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는 지상 2~3층에서 수업이 열린다. 토요일 고촌교회의 500여명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악기별 수십개의 클래스를 동시다발로 운영하는 ‘관현악 꿈의 학교’ 현장이다.

고촌교회에는 이제 7개의 오케스트라와 1개의 소년소녀합창단이 있다. 사진은 청년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모습. 고촌교회 제공

2층 세미나실에서 바이올린 강사 백민경(28·여)씨가 아이들 3명을 모아 놓고 1명씩 지도하고 있었다. 곡명은 ‘아리랑 랩소디’로 다음 달 10일 고촌아트홀에서 열리는 평화음악회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중학생 조단우(13)군은 “학원 같은 데선 연습을 다 같이 해야만 하는데, 여기선 1명씩 선생님께 배워 좋다”면서 “이번달 4박 5일 음악캠프, 다음 달 평화음악회를 통해 오케스트라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돼 설렌다”고 말했다. 바이올린 전공자인 백씨 역시 고촌교회 오케스트라 출신이다. 김포에서 처음 클래식 악기를 접하던 아이들이 자라나 이제 선생님으로 돌아오고 있다. 백씨는 “교회를 통해 처음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접했다”면서 “아이들에게 제가 얻은 기쁨을 되돌려 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맞은편 자작나무홀에선 관현악 꿈의 학교 교감인 김흥호(54) 권사가 수십명 학부모들을 상대로 음악캠프와 평화연주회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교회는 수준별로 7개의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 소년소녀합창단도 있다. 수백명 아이들의 수십개 음악 클래스를 조율하는 일은 웬만한 행정 경험이 없으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김 권사는 대학교 총무처장을 역임했는데 무보수로 토요일 교회의 오케스트라 사역을 돕고 있었다. 그는 “2004년 저도 제 아이를 오케스트라에 입단시키면서 학부모 총무로 봉사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김포청년오케스트라로 시작해 2006년 중국 베이징 초청연주, 2007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연주, 2012년부터 대만 일본과 국제 음악 교류를 해온 일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바이올린 수업에 보내고 교실 밖에 있던 학부모 정영미(46·여)씨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에서 김포로 한강 다리를 건너온 정씨는 “언니 자녀들이 고촌교회에서 9년간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는데, 저도 꼭 하라고 추천해 주었다”면서 “요즘 아이들은 혼자 크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통해 다른 악기 소리를 듣고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우는 게 정말 소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당장은 아니지만, 더 나이가 들면 신앙을 생각해보겠다”며 “기왕이면 고촌교회가 좋을 것 같다”고도 했다.

오케스트라 담당인 오호연(32) 부목사는 “고촌교회의 음악 학교는 전문 음악인 양성이 목표가 아니다”며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주변의 다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삶의 학교”라고 강조했다. 그 안에서 복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노력하는 게 교회의 목표였다.

교회가 아트홀이고 오케스트라로 부흥한 이야기는 고촌교회의 단면일 뿐이다. 핵심은 ‘마을을 교회삼아, 주민을 교우삼아’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고촌교회이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의 ‘마을목회’ 대표 주자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성인 상대 악기 교실을 비롯해 어르신 교회학교인 시니어 칼리지, 주부 상대 문화교실, 축구 야구 산악회 등 주중에도 교회가 한산할 날이 없어 보였다.

박정훈 목사는 “선교만을 목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운영했다면 지금의 결과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며 “28장으로 끝난 사도행전의 29장을 새로 써가는 교회가 되도록 교우들과 함께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89033&code=23111113&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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