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 왔지만 쉴 곳이 없어요

작성일2018-08-19

지난 9일 서울 강서구 양천로 본월드미션에 있는 예배당에서 선교사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본월드미션은 2014년부터 선교사 주거 지원뿐 아니라 매주 ‘열린예배’를 드리며 선교사들의 영적 쉼을 지원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불가리아에서 활동하다 4년 전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A선교사(68)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림프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진단이었다. 급한 수술을 마친 뒤 투병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지낼 곳을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파송 전 집과 재산 등을 모두 처분했기 때문이다. 석 달간 파송교회의 게스트룸에서 지냈지만 장기간 머물 순 없었다. 결국 반지하 월세방에 사는 아들이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마련했다. A선교사는 아들네와 함께 살며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가족과 한국에 온 네팔 선교사B씨(45)는 “올해가 안식년이지만 기거할 곳이 없어 세 달의 안식월로 대체했다”며 “그럼에도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캐리어를 끌고 가족과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B선교사는 처음 2주간 경기도 가평의 한 청소년수련관에서 묵었다. 크리스천 집사가 운영하는 곳으로 선교사들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한다. 그러나 계속 머물기 힘들었다. 장기간 투숙이 어려울 뿐더러 선교보고를 위해 경북 구미, 전남 해남, 전북 전주 등 전국의 후원교회를 방문해야 하는데, 오가는 교통이 불편했다. B선교사는 현재 본가가 있는 경북 포항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많은 선교사들이 숙소 구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며 “단기간 머물 경우 호텔 비용이 부담 돼 찜질방에서 보내는 선교사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복음전파에 헌신한 선교사들이 선교대회와 사역보고, 비자발급, 건강검진, 안식년 등으로 한국에 왔을 때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송한 선교사에 비해 안식관 등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발표한 ‘2017년 12월 한국 선교사 파송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선교사 파송 수는 170개국 2만7436명이다. 미국에 이어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나라지만 선교사 복지에 있어선 ‘선교사 파송 국가 2위’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다.

선교사들은 대부분 한국에 왔을 때 부모나 친척 집에 머문다. 교회들에서 게스트룸을 운영하지만 대상도 교회파송 선교사로 제한한다. 선교사를 위해 만든 게스트룸이 교회 자체 공간으로 사용돼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많은 선교단체와 크리스천들이 선교사 숙소를 마련했지만 단기간 투숙을 위한 곳이 대부분이다. 장기간 묵을 장소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동아시아권에서 10년 간 사역한 C선교사(51)는 “많은 선교사들이 안식년 때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해 사역지로 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워낙 숙소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선교사 사이에서 좋은 숙소를 공유하는 게 조심스러워졌다”고 밝혔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예장고신, 기독교한국침례회 등 교단에서도 안식관을 운영하지만 공간 부족으로 대부분 교단 선교사에게만 장소를 제공한다. 예장통합 관계자는 “총회에서 1500여명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그들만을 위한 방은 6개에 불과하다. 교단 선교사도 수용하기 어려워 공식적으로 광고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선교사 사역에 사명감을 갖고 헌신하는 크리스천 기업이 있다. ‘본죽’ 창업주인 최복이 재단법인 본월드미션 이사장은 게스트하우스, 치유상담사역, 힐링캠프 등 선교사 섬김을 위해 2014년 본월드미션을 만들었다. 본월드미션에서 운영하는 ‘본 월드 하우스’는 본사가 있는 서울 염창동 등 세 개 지역에 있다. 4개의 건물에 숙소를 만들어 최대 130여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두 달까지 묵을 수 있는데 한 달은 무료이고 나머진 하루에 1만원 정도 받는다.

본월드미션은 공간제공뿐 아니라 매주 수요일 선교사들이 마음껏 예배하고 기도하며 교제할 수 있도록 ‘열린예배’도 드린다. 비품을 비롯해 도시락 간식 생필품 등도 무료로 제공한다. 8월부턴 건강검진 사업도 시작했다.

송진희 본월드미션 전도사는 “본 월드 하우스는 현재 만실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과 인도 등에서 추방된 적잖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 선교사 게스트룸을 운영하는 10여 곳에 전화 문의를 했다. 대부분 기사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지금도 만실인데 기사로 나갈 경우 감당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선교센터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모든 선교사들에게 혜택을 주고 싶지만 이렇게 거절하는 게 더 많아 늘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숙소 관리와 운영 등 촘촘히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 있는 사역이라는 의견도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한 선교회 관계자는 “선교회 간사가 다른 일을 하면서 숙소 관리를 하는데 쉽지는 않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이곳에서 편안하게 휴식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선교회 관계자들은 한국교회가 선교사 복지에 더 힘써주길 원했다.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김철영 목사는 “교계뿐 아니라 크리스천 기업들이 해외에서 사역하며 헌신한 선교사를 위해 쉼터를 짓는 사역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밝혔다.

구영삼 KWMA 사무국장은 “미국 등 서양 국가들은 선교 역사가 대부분 100년이 넘다 보니 선교 복지가 잘 돼 있다”면서 “반면 우리나라에선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선교사 시대가 열렸다. 상대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짧았다”고 지적했다. 구 사무국장은 “그동안 선교사 파송에 주력했다면 이제부터라도 한국교회와 선교단체 등이 힘을 모아 선교사 돌봄 사역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93792&code=23111111&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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