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죽어야 세상을 살린다

작성일2018-08-14

이중표 목사

거지(巨智) 이중표(1938∼2005·사진) 목사는 일생 목회와 분열된 교회의 화합을 위해 살았던 목회자다. 십자가만 바라보고 무소유를 실천하며 자기를 버리는 삶을 살았던 그는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별세신앙, 별세신학’으로 집대성했다. 신학교에 매몰된 이론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통해 증명해 낸 신앙과 신학의 태도이자 푯대였던 셈이다. 그를 기리는 평전인 ‘죽어서도 행복한 사람’(쿰란출판사)이 곧 독자들의 손에 안긴다. 일생 ‘죽어야 산다’고 설교했던 그의 별세신앙과 신학은 함께 나오는 연구서 ‘이중표 목사와 별세’(쿰란출판사)에 담긴다. 650쪽에 달하는 평전은 김성영 전 성결대 총장이 집필했다. 연구서는 이 목사의 제자들이 주제별로 나눠 썼다.

이 목사가 설립한 경기도 성남 분당 한신교회(이윤재 목사)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이중표 목사의 별세신학과 신앙’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윤재 목사, 김성영 전 성결대 총장, 김윤규 한신대 교수, 이강석 C국 선교사가 참석했다.

<참석자>
△ 이윤재 분당 한신교회 목사
△ 김성영 전 성결대 총장
△ 김윤규 한신대 교수
△ 이강석 선교사


이윤재 목사=올해 분당 한신교회가 입당한 지 20주년이 된다. 이를 기념해 고 이중표 목사님의 삶과 신앙을 기리는 저서 2권을 출판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책을 집필하는 데 참여하신 분들로 모두 목사님과 깊은 관계를 가진 분들이다. 각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소개해 달라.

김성영 전 총장=2000년대 초·중반 성결대 총장으로 재임할 때 목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특히 신학교육과 관련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김윤규 교수=1972년 목사님이 전도사였던 시절 한신대 영성수련회의 강사로 오셨다. 그때 학생이었는데 그가 말하는 목회자의 자세, 한국교회의 미래 등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방문하셔서 눈물을 흘리며 격려하고 장학금도 주셨다. 큰 사랑을 받았다.

이강석 선교사=오랫동안 별세목회연구원 연구실장으로 목사님을 모셨다. 목사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네게 물려줄 건 별세신학뿐이다”라고 하셨다. 유언대로 C국에서 선교사로 별세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목사=별세는 일반인에게 생소하기도 하고 어려운 주제다. 별세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가.

김 교수=이중표 목사님이 1965년 농촌에서 목회할 때 교회 마당에서 로마서 1장 15절이 말하는 ‘복음의 빚진 자’ 사상을 묵상하다 통곡을 한 일이 있었다. 이때 내가 받은 은혜의 복음을 나누겠다고 결심한 게 별세신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별세는 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목사님은 이후 한신교회를 성장시키면서도 편안한 삶을 살지 않고 매일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았다.

이 선교사=목사님이 젊었을 때 폐결핵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선 일이 있었다. 이때 예수님을 영접했다. 세 번의 수술로 죽을 뻔했는데 네 번째로 별세하셨다. 평생 이어진 죽음의 경험이 별세신학이 태어나고 자란 배경일 것이다. 누가복음 9장 31절에 별세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는 이를 버림이요 떠남이며 새로운 삶이라 해석했다.

김 전 총장=누가복음에도 별세가 나오지만 목사님은 일생 가난한 삶과 목회 현장에서 이를 경험하고 배웠을 것이다. 어느 날 전광석화같이 깨달았겠지만 일생에 걸쳐 구도자처럼 살았던 과정을 통해 성숙했을 것이다.

이 목사=일반적 별세와 이중표 목사님의 별세는 다르다고 본다. 일반적으론 단순한 죽음이지만 목사님의 별세는 죽음을 넘어선 또 하나의 세계다. 일반적 별세가 죽어서 가는 것이라면 그의 별세는 살아서 가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야 별세다. 그런 면에서 목사님의 별세는 지금 여기서 누리는 새로운 세상이다. 별세신학을 목회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오늘날 한국교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김 교수=목사님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냈다. 활발한 연합활동을 하면서 교회일치를 강조했다. 사리사욕을 버리면 하나 될 수 있다. 별세신학이 지향하는 바와 교회의 일치는 어찌 보면 서로 맞닿아 있다. 자기를 죽이고 주님을 나타내는 데 분열이 있을 리 없다. 모든 일치와 연합의 신학에 자기 죽음의 신학이 있다.

이 선교사=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게 별세의 의미다.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넘어서는 신앙의 행위가 별세신학에 담겨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믿기만 하면 세속적인 신앙이 된다. 한국교회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인하고 가난해질 때 영적으로 부유해지고 세상을 살릴 수 있게 된다. 외형적으로 커지기만 한다면 그건 복음의 속류화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회외적 환경에 있는 게 아니다.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별세신앙이 필요하다.

김 전 총장=맞다. 별세신학의 뿌리는 영성이다. 결국 영성이 기본이 된 상태에서 교회는 성장하고 발전한다. 한국교회가 별세신학을 통해 든든한 영성의 토대를 회복해야 한다.

이 목사=별세신앙이 교회 갱신과 영성 회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말씀인데 자세히 이야기 해 보자.

김 교수=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강조했다. 믿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성화로 나아가기 위한 삶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성화의 단계를 지나 영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 결국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완성된다. 별세는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로 지금 여기서 사는 삶을 강조한다. 그래서 성화의 신학이다.

김 전 총장=교회는 계속 개혁돼야 한다. 이중표 목사님이 목회자 세미나에서 항상 강조한 것이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것이었다. 교인들에게도 ‘죽어야 산다’고 외쳤다. 요즘 눈으로 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다. 지금 한국교회는 어느 때보다 세속화됐다. 목사가 죽지 않고 살려고 버둥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 교수=목사님은 별세신학을 통해 하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다. 그러면 교회 연합 나아가 남북화해와 평화를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특히 목회자가 하늘을 품는다면 교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교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말을 듣기 위해서도 목회자에겐 별세의 은혜가 필요하다.

이 선교사=목사님은 평생 자기를 비우고 살았다. 별세를 말하기는 쉬우나 별세를 실천하기는 어렵다. 일생 20평대 아파트에 살았고 말년에야 조금 넓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는 강남이라는 부유한 주위환경과 별개로 일생 가난하게 살았다.

김 전 총장=목사님의 아호가 ‘거지’였다. 한자로 풀면 클 거(巨) 지혜 지(智), 다시 말해 ‘큰 지혜’를 뜻한다. 동시에 아무 것도 없는 거지처럼 살겠다는 뜻도 담겼다. 자신의 호처럼 평생 자기 소유를 남기지 않고 베풀고 사셨다.

김 교수=그렇다. 목사님은 죽음을 앞두고 옷과 넥타이, 책을 후배들에게 나눠 주셨다. 나도 넥타이 하나를 받았다.

이 목사=세 분의 말을 들으니 저도 별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중표 목사님은 1970∼80년대 예수님의 정신으로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우려 노력했고 이를 별세신학이라는 모델로 정립했다. 이는 교세가 침체하는 요즘에도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고 옥한흠 목사님도 생전 “그 친구는 죽어서 잘 살았어”라고 이중표 목사님을 평가한 일이 있다. 이 말이 큰 위로가 된다. 죽어야 사는 복음의 비밀을, 삶으로 가르치는 목회를, 불편해야 행복한 역설적 진리가 더욱 확산되길 소망한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92577&code=23111111&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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