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단기봉사 현장] 손자처럼 친구처럼… 독거 어르신들의 특별한 손님

작성일2017-08-09

서울중앙교회 청년들과 쪽방촌 어르신이 교회 소예배실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박현수(가명·72)씨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산 지 20년이 넘었다. 젊은 시절엔 작은 채소 가게를 운영하면서 사장님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지인에게 속아 장사 밑천을 날렸고 이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과 의절까지 하면서 의지할 곳을 찾다가 쪽방촌으로 흘러들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쪽방은 3㎡ 남짓하다. 개미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들은 창문조차 없어 여름엔 열기로 가득 찬다. 숨쉬기조차 힘든 무더위와 외로움에 지친 그에게 3년 전부터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바로 종로구 창경궁로 서울중앙교회(김진영 목사) 대학부 청년들이다.

이 교회 대학부는 지난 25일부터 29일까지 돈의동 쪽방촌에서 여름 단기선교를 개최했다. 매년 농촌교회를 찾아 단기선교 활동을 하다 지역사회를 돌아보자는 제안이 4년 전에 나왔다. 이후 2015년 7월부터 쪽방촌 단기선교를 시작했다.

이번 단기선교는 소외 받는 쪽방촌 어르신들과 어울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더위에 지쳐 방안에 틀어박혀 있던 어르신들은 지난 26일 청년들과 난생 처음 나들이를 떠났다. 경기도 의왕 왕송호수 근처에서 외식을 하고 레일바이크도 탔다. 박씨는 레일바이크 페달을 힘껏 밟으며 “좋은 곳으로 나들이도 가고 말동무도 생겨서 정말 좋다”고 했다.


평생 찍을 일 없을 것 같던 스튜디오 사진 촬영도 했다. 청년들은 서울중앙교회 소예배실 내부에 디지털카메라와 삼각대, 조명장비를 설치해 진짜 스튜디오처럼 꾸몄다. 촬영의상으로 한복과 양복도 준비했다. 최희숙(가명·79) 할머니는 살구색 저고리와 남색 한복치마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꽃 한 송이를 귀 위에 꽂고 손에는 꽃다발을 들었다. 최 할머니는 “평생 한복 입고 사진 찍는 건 처음”이라며 “학생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올해 80세인 한 할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서 “오늘은 60대로 보이지 않냐”며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어르신들은 청년들과 함께 비누와 문패를 만드는 시간도 가졌다. 청년들과 짝을 이뤄 천연비누를 제작했고 어른 손바닥 크기의 나무 조각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으며 문패를 만들었다. 공주남(23) 씨는 “어르신들이 비누와 문패 만드는 것도 좋아하셨지만 우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즐거워하시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29일은 어르신 초청 잔치로 단기선교의 대미를 장식했다. 어르신들은 여름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대접 받았다. 청년들은 ‘사랑의 배터리’라는 트로트 가요를 부르며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 식사 후엔 함께 포크댄스를 배우고 윷놀이를 하면서 어울렸다. 다음 해를 기약하며 어르신들과 청년들이 서로에게 편지를 써서 타임캡슐에 넣는 시간도 있었다.

쪽방촌 단기선교가 지금처럼 자리 잡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 어르신들은 낯선 대학생들이 쪽방촌을 찾자 처음엔 경계했다. 청년들 역시 쪽방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직접 도시락과 간식을 싸들고 쪽방을 찾아 손자·손녀처럼 말동무가 돼주자 어른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청년들도 이젠 어른들을 가족처럼 여긴다.

서울중앙교회는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일요일 쪽방촌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도시락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부를 묻고 인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방일진 대학부 목사는 “쪽방촌 어르신들은 자포자기 하거나 절망에 빠진 경우가 많다”며 “잠깐의 동정이 아니라 이들의 친구가 돼주는 게 쪽방촌 단기선교의 의미”라고 말했다.

글·사진=구자창 기자, 박영은·배하은 대학생인턴 critic@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92489&code=23111111&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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