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목회자들의 사랑방’ 경은교회, 끝내 문 닫아
작성일2018-12-14
오갈 데 없는 경북 지역 은퇴 목사들의 마지막 예배처였던 경은교회가 1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교회 설립자인 백낙기(84) 목사 건강이 악화되면서 후임자를 물색했으나 오려는 이가 없었다. 고심 끝에 백 목사는 교회의 자산을 그가 수학했던 한신대에 기증했다.
12일 찾은 경은교회에는 교회임을 나타내는 표지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은혜롭게 한다는 ‘경은(敬恩)’이라는 한자가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비석 뒤편엔 설립자인 백 목사 이름과 소속 교단(한국기독교장로회), ‘은퇴 교역자 예배처’라는 교회 설립 목적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교회를 둘러보던 백 목사가 비석을 보더니 “함께 예배하던 목사님 중 한 분이 우스갯소리로 경은을 경상도 은퇴 목회자들의 약어라고 했다”며 웃었다.
경은교회는 백 목사가 두 번째로 개척한 교회다. 그는 김천 한일교육재단 교목으로 일하던 1974년 11월 새론교회를 개척했다. 이후 99년까지 시무하다 65세 나이로 조기 은퇴했다. 6명으로 시작했던 교회는 100명 가까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25년간 목회하면서 예배당도 번듯하게 세우고 교육관도 지었다”고 말하는 백 목사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백 목사가 김천 지역에서 나름 자리 잡은 교회를 놔두고 다시 개척에 나선 건 후배 목회자들의 길을 열어주고 싶어서였다. 그는 조기 은퇴를 결정하면서 개척을 마음먹었다. “후배 목회자를 위해 은퇴했는데 계속 남아 있으면 (후배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며 “나처럼 은퇴한 목사님들이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백 목사는 김천YMCA 건물의 한 공간을 월 5만원에 빌려 은퇴 목사 가정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백 목사 가정을 포함해 7가정이 함께했다. 이후 소식을 듣고 김천 외에 구미 포항에서도 은퇴 목사들이 찾아왔다. 기장 교단 출신뿐 아니라 성결교 은퇴 목회자도 있었다. 이렇게 18년간 12가정이 경은교회를 거쳐 갔다. 예배는 오전 11시에 시작되지만 오전 9시부터 와 시간을 보내는 이가 많았다. 1시간 남짓 예배를 드린 뒤에는 함께 모여 식탁 교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18년간 안광자(79) 사모가 손수 준비했다. 백 목사에게도, 은퇴 목사들에게도 경은교회는 사랑방이자 안식처였다.
백 목사는 목회 인생 중 가슴이 뜨거웠던 순간 중 하나로 2010년 6월 경은교회 헌당예배 때를 떠올렸다. 그는 “먹는 것, 입는 것 아껴 모은 돈으로 YMCA에서 지금의 자리로 예배당을 옮겼다”며 “헌당예배 때 함께 예배드리는 선후배 부부와 지인들 70여명이 모였는데 그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는 없었다. 다들 나이가 들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마지막 예배 때는 7가정만 남았다. 경은교회 버팀목이던 백 목사의 건강 역시 좋지 않다. 지난 몇 달간 젊은 은퇴 목사들을 찾아다니며 경은교회를 맡아 줄 것을 부탁한 것도 더 이상의 목회는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응하는 이가 없었다. 백 목사는 “은퇴 목사들의 예배처가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면서 “교단, 노회 차원에서 고민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 목사는 경은교회를 매각해 그 대금을 한신대에 기부했다. 교회가 갖고 있던 재정은 끝까지 함께했던 7가정에 똑같이 분배했다. 백 목사는 “돌아가면서 설교를 했는데 사례비 한 번 드리지 못했다”며 “마지막이라도 이렇게 드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김천=글·사진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46600&code=23111113&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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