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철수작전 화물선 1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 제독
작성일2018-06-20
[한국전쟁 68주년]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사투, 흥남작전은 주님이 이끄신 역사”
“더 많이 죽이고 더 많이 파괴하려고 목숨을 내건 전쟁터에서 생명 하나를 건져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지요. 돌아보면 그때 작전은 하나님이 이끄신 역사의 한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망백(望百)의 노병은 68년 전 함경남도 흥남에서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꺼내 놨다. 노병은 로버트 루니(91) 예비역 제독. 그가 말한 작전은 ‘흥남철수작전’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북진했던 미군과 한국군이 피란민과 함께 흥남항에서 선박으로 철수한 작전이다. 군수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투입됐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의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선장이 군수품을 항구에 내려놓고 1만4000여 피란민을 태워 경남 거제도까지 이송하는 장면은 영화 ‘국제시장’의 모티브가 돼 감동을 줬다.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가 주최한 ‘제68주년 한국전 기념 해외 참전용사 초청 보은행사’ 참석 차 지난 16일 방한한 루니 제독은 당시 빅토리호의 1등 항해사로 조타실을 지켰다.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그는 “흥남항에 도착했을 때 장진호에서 철수한 미군과 한국군 10만여명, 차량 1만7000여대, 군수물자 35만t이 그득했다”면서 “하지만 가장 놀란 광경은 항구로 밀려오고 있던 20만여명의 피란 행렬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초 군 병력만 철수하려던 작전은 라루 선장의 명령으로 전격 수정됐다. 고(故) 김백일(국군 1군단장) 소장, 현봉학(미 제10군단 민사부) 고문의 거듭된 피란민 구출 요청도 힘을 보탰다.
“라루 선장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배에 있는 무기를 모두 버리고 빠짐없이 승선시켜라’. 16시간에 걸쳐 군수물자 하역과 피란민 승선이 이어졌습니다. 선원들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한국말 ‘빨리빨리’를 수천 번 외쳤습니다. 그렇게 빅토리호는 희망을 싣고 23일에 출항했죠.”
빅토리호는 혹한의 날씨와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을 딛고 항해한 끝에 25일 거제도에 도착했다. 그 사이 선상에선 5명의 아이도 태어났다. 루니 제독은 “수술 도구도 없는 배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태어난 기적 같은 생명이었다”며 “당시 미군들은 태어난 순서대로 ‘김치1’부터 ‘김치5’까지 별명을 붙여 축하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은 흥남철수작전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상 구조’라고 칭송하지만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한 것뿐”이라고 했다. 이어 “라루 선장도 참전 후 만난 자리에서 ‘위기와 모험뿐인 항해였지만 주님의 손이 배의 조타 핸들을 잡고 있음을 확신했다’고 회상했다”고 덧붙였다.
피란민 중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도 탑승하고 있었다. 루니 제독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취임 후 처음 방미했을 때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 ‘장진호전투 기념비’ 앞에서 자신과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빅토리호가 없었다면 자신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제 손을 잡아줬지요. 그러면서 ‘참전 용사들이 생존해 있을 때 한반도 통일을 지켜볼 수 있게 지도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루니 제독의 왼쪽 가슴엔 한국과 미국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그는 배지를 어루만지며 흥남철수작전 때 가슴에 품었던 성경 구절을 소개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67641&code=23111111&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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