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못보는 태아 한 해 17만… 생명존중 근본대책 세워야

작성일2016-10-21

정부가 불법 낙태에 대한 처벌 강화 방침을 철회했다. 충분한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밀어붙인 데다 의료계와 여성계가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교계에서는 정부의 졸속 행정에 우려를 표하며 불법낙태 근절과 생명 존중을 위해 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2일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범위를 구체화하고 이를 행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1개월에서 12개월로 상향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는 ‘임신중절수술’이 포함돼 있어 개정안이 통과되면 불법 낙태에 대한 처벌도 강화된다. 현행법상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등에 의한 임신이 아니면 낙태는 불법이다. 보건복지부는 그러나 여성·사회단체와 의료계가 낙태죄 폐지까지 요구하며 강력 반발하자 19일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무분별한 낙태에 반대해온 교계와 사회단체들은 우려를 표했다. 성경은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렘 1:5)”라는 말씀처럼 태아도 생명체로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낙태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에선 한 해 17만여 건의 낙태수술이 이뤄지고 있다.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여성뿐 아니라 뱃속의 아이도 고귀한 생명체인데 어떤 이유로도 생명을 죽이는 행위가 정당화될 순 없다”고 강조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 대표 이종락 목사는 낙태가 여성에게만 혹독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낙태 시술은 어쩔 수 없이 여성의 몸을 건드리기에 육체적·정신적 후유증을 동반한다”며 “상담을 해보면 낙태 후 정신분열증, 자살충동, 우울증 등으로 오랜 시간 괴로워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말했다.

낙태를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강화를 넘어선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출산 및 양육에서 남성의 법적 책임 강화, 미혼모에 대한 인식 변화 및 지원, 생명 윤리를 강조한 성교육 실시 등이 있어야만 낙태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락 목사는 “책임 있는 성관계와 생명 윤리가 더욱 강조돼야 한다”며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낙태반대 운동을 해온 새생명사랑회 대표 김길수 목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낙태율과 자살률 등 우리나라에선 생명이 너무 가볍게 여겨지고 있다”며 “무엇보다 생명의 고귀함을 알리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 변화와 지원도 더욱 절실하다. 선진국에서는 미혼모가 아이를 잘 양육하도록 보호해주고, 이들의 경제적 자립도 지원한다. 특히 미국과 노르웨이, 스웨덴은 아이의 생부가 아이를 책임지지 않으면 공권력이 나서서 양육의 의무를 지도록 한다.

이승구 교수는 “최근엔 입양절차가 까다로워져 미혼모가 자녀를 낳는 일 자체가 어렵게 됐다”며 “무엇보다 미혼모들이 편안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설이 많아져야 하고 교회 공동체도 여기에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반대 운동을 하는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라이프의사회 차희제 회장은 “의사의 본분은 생명을 살리는 것인데 낙태는 기본적으로 엄마 뱃속에서 잘 자라는 아기를 죽이는 행위”라면서 “의사로서 낙태를 합법화시키자는 주장은 창피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