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국 어린이들 축구 통해 신세계 경험… “꿈이 생겼어요”

작성일2016-08-24

페루 리마의 기아대책 001센터 결연아동들로 구성된 희망월드컵 축구팀 아동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김중원 선교사 제공

축구를 통해 빈곤국 아동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이 다음 달 6∼8일 서울에서 열린다. 대한민국을 포함, 10개국 CDP(Child Development Program·어린이개발사업) 후원아동 중 남녀 혼성으로 선발된 축구선수들이 저마다 꿈을 안고 대회를 준비 중이다. 지구 반대편, 남미 대륙에서는 브라질과 페루 두 팀이 출전한다. 지난 8∼13일 페루 수도 리마 외곽 빈민촌 아마우따 지역, 기아대책 001센터에서 기대봉사단 김중원(38) 선교사와 함께 대회를 준비 중인 페루 아동들을 만났다.

◇축구가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지난 8일 오후 6시쯤, 마을 공터에 10∼16세의 소년 8명과 소녀 3명이 나타났다. 남미 축구 하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떠올리지만 페루의 축구 열기도 만만찮다. 아이들도 평소 축구를 즐기고, 축구선수를 장래희망 1순위로 꼽는 아이들 찾기가 어렵지 않다.

페루팀 선수들은 인근 대학 아마추어 축구코치로부터 특별한 지도를 받고 있다. 이날은 드리블을 하다 1대1로 패스를 주고받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축구를 해본 적이 없던 여자 아이도 이젠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선수들은 축구실력뿐만 아니라 인성, 가정형편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선발됐다. 축구가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희망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이 아이들에겐 쉽게 찾아오지 않을 기회라는 점이다.

김 선교사는 “탈락된 아이의 부모들이 찾아와서 왜 우리 애는 안 뽑았냐며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마을을 둘러보면 곧바로 이해가 된다. 여기는 안데스 산맥 등에서 일자리를 찾아 리마로 이주해온 이들이 판잣집을 짓고 사는 빈민촌이다. 리마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사는 이들의 월 평균 소득은 220달러. 특히 혼인신고를 올리지 않은 채 살다가 생활고 등의 이유로 아이와 아내를 두고 떠나버린 남성이 많아 깨어진 가정의 비율이 70%에 달한다. 여행은커녕, 리마 시내 구경도 못한 아이들이 태반이다. 김 선교사는 “희망월드컵을 통해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 꿈을 찾고, 다녀온 뒤에도 희망을 간직한 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꿈 꾸며 준비하는 아이들=김 선교사는 첫 해외 여행길에 오를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준비 과정을 밟고 있다. 10일에는 아이들과 시내 나들이에 나섰다. 한국대사관을 찾아 홍보동영상을 보고,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와 같은 한글 인사말을 배웠다. 신성기 영사는 아이들에게 “한국에 가면 너희들이 바로 페루의 외교관”이라며 “가서 페루에 대해 많이 알리고, 돌아와서는 페루 사람들에게 한국을 소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무실에 들러 최근 한국을 3개월간 방문하고 돌아온 페루인 직원과 간담회를 가졌다. “한국에서는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직원의 말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했다. 이날 상당수 아이들은 처음으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직접 체험했다.

11일엔 김 선교사와 함께 ‘사랑의 집짓기’ 활동에 나섰다. 마을의 미혼모, 독거노인, 형편이 어려운 가정 등에 후원을 받아 조립식 나무집을 지어줬다. 이번이 61번째 집이다. 나옐리 곤잘레스(14·여) 등 여자 아이들은 페인트로 문과 외벽을 칠하고, 남자 아이들은 자재를 나르고 전기작업을 하는 어른들을 도왔다. 나옐리 가족이 사는 집도, 기아대책이 후원한 집이다. 나옐리는 “내가 남을 도울 수 있어 기뻤고, 무엇보다 집주인 아줌마가 좋아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 비록 형편이 어려워도 얼마든지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12일 밤에는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희망월드컵 출정식을 열었다. 한국에 가서 선보일 전통춤과 스킷드라마, 찬양과 율동을 마을 주민과 가족들 앞에서 먼저 선보였다. 이날 제임스 아르데미오(14)는 관객 사이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새아버지를 발견하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3년 전 어머니와 재혼한 새아버지를 통해 제임스는 비로소 ‘아버지’란 존재에 눈을 떴다. 가정폭력을 휘둘렀던 친아버지와 달리 새아버지는 늘 따뜻하게 그를 안아줬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새아버지가 가족 중 해외에 나가는 사람은 처음이라 자랑스럽다면서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주셨다”며 “아버지와 두살 된 여동생 에르마를 위해 꼭 골을 넣고 싶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무엇보다 아이들과 매주 현지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매일 큐티를 권장하면서 아이들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신앙심이 깊지 않던 아이들도 준비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으며 성장해가고 있다. 제임스는 “찬양 연습을 하는데 눈물이 나고, 예수님이 곁에 계신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며 “며칠 전에는 큐티 말씀이 마음에 확 와 닿아서 동네 경찰과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리마(페루)=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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